마라탕 맛, 딸

맵고 짜고 달고 쫀득한

by 연목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의 방학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방학하자마자 서울과 제주도를 다녀오더니 학원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붙들고 산다. 당연지사 아침 10시가 넘어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그런 딸이 가끔 외출을 하는 때가 있다. 시내 가서 마라탕을 먹거나 다이소에 쇼핑하러 갈 때다.


오늘도 갑자기 마라탕을 먹으러 혼자 시내에 가겠단다. 이 더위에 버스 타는 게 안쓰러워 겸사겸사 딸에게 아빠랑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 “아빠도 마라탕 먹을 수 있어?”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오늘 한 번 먹어보지 뭐” “그래, 그럼”


KakaoTalk_20220819_162950181.jpg 마라탕 맛, 딸


딸아이를 태우고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마라탕 전문점을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라탕 전문점이 있다. 도대체 마라탕이 어떤 맛이길래 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궁금하던 찰나에 사춘기 딸과 오랜만에 이야기도 할 겸 따라나섰다. 식당은 2층이었다.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다. 나 빼고 모든 손님이 여자다. 아하! 먹어보지 않아도 어떤 맛인지 알겠다. 맵고 달고 짜고 거기에 쫀득한 식감일 것이 분명하다.


딸아이가 양푼과 집게를 잡는다. 마라탕을 먼저 드신 선배님(?)께서 여기에 넣어 먹을 재료를 담으면 된단다. 면 종류부터 만두, 꼬지, 야채, 버섯, 두부, 고기 등 20여 가지 되는 재료를 마구 담았다. 그랬더니 딸 曰, “아빠,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어?”, “몰라, 한 번 먹어보지 뭐.” 우리 딸은 시크하면서도 쿨하다. “그래, 그럼.” 그러고는 카운터에 있는 저울에 툭 올려놓는다. 100그램에 1,700원. 우리가 골라 담은 재료의 무게는 600g, 거기다가 고기 추가, 음료수 추가했더니 18,000원가량 된다. 그리고 직원이 묻는다. “어느 정도 맵게 할까요?” 딸 曰, “1단계요” 마라탕이 원래 맵게 먹는 거 아닌가? 그런데 1단계라니. 내가 알기로도 우리 딸은 매운 걸 잘 먹지 못한다. 매운 라면 몇 젓가락에 입술이 빨갛게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래 오늘은 내가 따라온 것이니 딸이 먹고 싶은 대로 아무 말하지 않고 받들어 모신다. 그리고 테이블에 돌아와서 잠시 기다리니 마라탕이 나왔다. 비주얼이 완전 내가 좋아하는 비주얼이다. 사실 나이 사십 중반에 ‘초딩 입맛’이라며 가끔 핀잔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 내 입맛을 딸은 완전히 닮았다. 하하.


국물부터 맛을 보니 구수하면서도 걸쭉하다. 약간 매콤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충분히 맛있다. 가만 보니 안의 내용물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 맛있는 걸 나는 왜 이제야 맛보고 있을까? 술안주로도 기가 막히겠다(술은 잘 못 먹지만).

국물 한 숟갈 뜨고 나니 마라탕이 점점 궁금해졌다. 구글링을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쓰촨 성의 전통음식이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샤부샤부의 ‘매콤하고 걸쭉한 버전’쯤 될 것 같다.

처음에는 양이 많은 것 같았으나, 먹다 보니 건더기 하나 없이 다 먹어 치웠다. 딸아이도 맛있었는지 얼굴에 만족감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떡볶이 재료 사 갈까?”하고 물었더니 두 말 없이 “응”이다. 이 찰나를 놓칠세라 연거푸 딸에게 묻는다. “그래도 아빠가 해준 떡볶이가 더 맛있지 않냐?” 그랬더니 “응, 아빠가 해준 게 더 맛있어, 마라탕보다”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시간과 돈을 투자한 보람이 있다.


사실, 이건 안 비밀이지만, 마라탕보다 더 맛있었던 건, 딸의 말이었다. 고맙다!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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