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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자발적 따뜻함에 대하여

92번째 소식

by 페로 제도 연구소
Tvoroyri-Kirkjugard.jpg 출처: in.fo

페로 제도의 작은 마을, Tvøroyri에서 일어난 일이다.

60명의 주민이 모여 마을의 공동묘지를 청소했다는 소식을 읽으며, 나는 잠시 멈췄다.


처음엔 그저 의무감에 떠밀려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 아닌가. 명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향하는 성묘길 말이다.


그런데 기사의 내용은 내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한 마을 주민이 "우리 함께 가족들의 묘지를 가꾸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라고 시청에 제안했다. 시청에서는 "좋은 생각이네요!"라며 흔쾌히 행사로 만들어주었다. 60명이 각자 가족의 묘를 정리한 후, 모두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한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서로를 존중하며 마음을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시청에서 말했다는 대목.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였다.


문득 우리의 성묘가 떠오른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조용하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피곤에 겨워 잠든 가족들. 듣기 싫은 잔소리. 네가 하네, 내가 하네 티격태격하는 것.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을 나누지는 못한다.


Tvøroyri 마을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묘지 청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정작 중요한 건 그 이후에 일어났다. 함께 앉아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 서로를 향한 존중과 관심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부러움이 피어난다. 우리는 언제부터 함께하는 일을 의무로만 여기게 됐을까. Tvøroyri 마을의 60명이 남긴 건 깨끗해진 묘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과 따뜻한 기억, 그리고 다음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쩌면 가장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출처: https://in.fo/news-detail/serstakt-tiltak-i-kirkjugardinum-undir-akurgerdi




[페로 뉴스] 시리즈는 페로 제도의 뉴스에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콘텐츠입니다. 페로어 번역에 다소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으며, 기사의 정확한 정보는 출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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