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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Sep 08. 2021

판교밸리에 드려지는 그림자

미국의 vs.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 젊은 IT기업이 몰려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크고 작은 벤처기업, 게임회사, 대기업 연구소들이 몰려있죠.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표방하며 IT밀집 지역을 설계한 곳인데, 애초 의도에 걸맞게 운영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조직문화에는 문제가 많았는데, 얼마 전 있었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 수면에 올라온 것이죠.


기사를 보면 실리콘밸리의 조직문화를 도입하겠는 취지가 악용되어 온 것 같습니다. 한국식 관리문화는 그대로인 채 엄격한 미국식 성과주의만 더해졌으니까요. 순전히 회사의 입장에서 체리피킹(cherry picking) 한 셈이죠. 아무리 조직을 바꾼다며 미국 문화를 도입하겠다고 해도, 경영진이 '직원 통제'라는 산업화 시대의 전유물을 내려놓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아무리 포장해도 그 내용물은 여전히 케케묵은 꼰대 문화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직원의 입장에서 좋은, 미국과 한국식 장점만을 제도적으로 섞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고연봉 + 자율 보장 + 수평적 조직문화에, 근로기준법으로 고용마저 안정된 회사. 정말 누구나 가고 싶은 이상적인 직장이겠지요.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이익 집단인 이상 이런 꿈동산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그렇다고 미국과 한국식 단점만 섞어 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성과지상주의가 얹혔으니 얼마나 끔찍한 환경이 되었을까요. 


실리콘밸리라고 마냥 행복한 곳은 아닙니다. 여기라고 업무 스트레스가 없을까요? 모든 조직은 다양한 욕망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기 마련입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관리 감독하는 마이크로 매니징(Micro-managing),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에, 가스 라이팅까지 시전하는 관리자들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애플이나 페이스북도 높은 업무강도에 못 견뎌 생을 마감한 직원의 이야기로 실리콘밸리가 떠들썩했지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직은 직원에게 자율을 부여하는 만큼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한편으로는 무서운 말이지요) 운영되고 있기에,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굴러갑니다. 


고용안정적 위계 조직과, 성과지상주의(결과가 안 나오면 해고)적인 역할 조직 중 무엇이 더 나은지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호되는 문화가 다를 뿐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조직의 편익을 위해 이 둘의 단점만을 혼재시켜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시킨 것은 분명히 문제라는 것입니다. 모쪼록, (그다지 기대는 되지 않지만) '직장 내 괴롭힘 법' 강화 등 정치권의 도움을 통해서라도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군대 내 성범죄처럼, 피해자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이러한 문제가 환기되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 예나빠.


표지이미지: https://kojects.com/2015/08/03/pangyo-techno-valley-vi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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