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고문

상사병보다 심하다는 미국병의 부작용

by 예나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3절



해가 바뀌었다. 조직 개편이 단행되면서 내가 속했던 S의 연구소 그룹은 통째로 사업부로 전배를 가게 되었다. 덕분에 사무실 이전, 새로운 조직, 새로운 사람, 오리엔테이션 등으로 어수선한 연초를 보냈다. 연구소 인력과 기존의 사업부 인력이 섞였고 팀들 간의 세부 조정이 있었다.


여느 대기업의 조직 개편이 그렇듯, 이렇게 큰 규모의 셔플링이 일어날 때면 사람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팀원들이야 끽해야 소속 팀이 바뀌는 정도 즉 자신의 팀장이나 팀원이 바뀌는 정도지만, 팀장들은 다르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팀이 공중분해 될 수도 있고, 팀은 건재해도 팀장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서도 왠지 나는 초연했다. I사 인터뷰 통과를 99% 믿고 있었고 마음은 이미 천조국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새로운 조직에서 조용히 한 명의 팀원으로서 주어진 실무에만 집중했다.....지만 어느샌가 나는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붕 떠버린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I사의 매니저 척척이에게 연락이 왔다. 인터뷰 후 처음 받는 메일이었다.


"예나빠. 해피 뉴이어! 한국에는 잘 돌아갔어? 우리는 여전히 너를 이 포지션의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연락했어. 혹시 네가 다른 대안을 갖고 있다면 알려줘, 우리가 더 빠르게 진행할게"


빠른 답장이었지만 인터뷰 결과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다른 대안이라면, 다른 회사에도 지원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통상 미국의 구직자들은 구직 활동 시 복수의 회사에 지원을 하곤 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아 다수의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게 되면 이를 지렛대 삼아 협상력을 극대화한다. 척척는 혹시 내가 그런 상황인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다른 회사와도 진행 중인 척하면 나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려나? 어떻게든 나를 잡으려 더 노력할까?'


잠시 유혹에 빠졌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어설픈 허세를 부릴 만큼 나는 대범하지 못했다. 혹여나 발각돼서 괘씸죄라도 적용될까 봐 이내 소심해졌다. 이럴 땐 정직하게 가는 게 정답이다.


"아니, 다른 대안을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어. 다만, 그쪽에서 결과가 언제 나올지 대략 알려주면 좋겠어"


내 메일에 답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메일 소통 이후 더 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조급해졌다. 인터넷 형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미국 회사들은 빠르면 인터뷰 당일에도, 늦어도 일주일 내에는 합격여부를 알려준다 했다. 내 마음의 확신 게이지에서는 점점 그 수치가 떨어지고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분명히 분위기는 좋았는데...'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쳐댔던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쪼그라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라며 혼자 인지부조화에 빠졌다. 이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그나마 현실적이었다.


"아마 자기가 그들에게 확신을 못 심어줬을 거야. 다른 후보자들을 다 만나보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만큼"


아내의 말에 비로소 현실자각이 되었다. 그들이 인터뷰에서 내게 보인 친절함과 호의는 말 그대로 '관습'이었다. 최소한의 예의였을 뿐이다. 멀리서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인터뷰를 보러 온 구직자에 대한 배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이스함으로 무장한 미국인 특유의 이중성을 나는 곡해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마음에 쏙 든다고. 뒤늦게 자기 객관화가 되자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v.png 상사병보다 심한 미국병의 부작용.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마지막 메일을 받은 뒤 일주일, 이주일, 심지어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 가졌던 확신은 거의 사라지고 점차 시든 꽃처럼 내 감정은 메말라 갔다. 이미 나는 희망 고문을 넘어 단념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S사를 떠났고 내 영혼은 이미 가출한 상황이었다.


'문의 메일을 한번 보내볼까'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그쪽에서 결정이 내려졌다면 문의 메일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구차함만 더할 뿐. 그 뒤로 깨끗이 잊어버리기로 했다. 일로 복귀하자. 인생에서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자. 산호세 한번 찍어봤으면 됐잖아.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깨끗이 잊힐 리 없잖아!!'



손에 다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풍요로운 미국 엔지니어의 길'이 한여름밤의 꿈이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아쉬움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정확히 척척의 마지막 메일을 받은 지 한 달째 되던 날, I사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다음 단계 (Next Step)"라는 제목의.


"안녕! 예나빠. 나는 I의 리크루터 '말순이'야. 앞으로 너와 같이 이후의 채용 과정을 진행하게 될 거야. 우선 이 단계까지 오게 된 것을 축하해! 입사 희망 연봉을 알려 줄 수 있어?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은 얼마니?"


뜬금없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듯한 메일이었다. 뭔가 중간에 한 단계가 생략된 듯한. '축하해. 늦어서 미안. 우리는 너를 최종적으로 채용하기로 결정했어"와 같은 매니저의 메일이 먼저 왔어야 하지 않나?


허탈했다. 한 달이나 기다리게 만들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로 연봉을 물어보다니. 게다가 '이 단계까지 온 것을 축하해'라니. 그럼 다음 단계도 있다는 거야? 지금 나 서바이블 게임 중이야? 그래서 합격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w.png 인터뷰 통과가 끝이 아니었다. 이미지 출처=예나빠 태블릿


말순이가 말한 다음 단계는 '연봉 협상'인 듯했다. 메일에 확정적인 표현이 없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협상이 잘 안 될 시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벌써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일까? 오매불방 기다리던 메일을 받았지만 기쁨을 만끽하기 앞서 오만가지 생각부터 들었다.



"여보! 연락 왔어!"



우선 나만큼이나 연락을 기다렸을 아내의 갈증부터 해소시켜줘야 했다. 확실한 것은 인터뷰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고, 메일의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99% 합격인 듯했다. 아내는 '정말? 최종적으로 된 거야?'라고 연신 물어댔고, 나는 '희망 연봉 물어보는 걸 보니 다 된 게 아닐까?'라며 뜨끈 미지근하게 대답했다. '그게 뭐야. 가타부타 확실히 말을 해줘야지!'라며 투덜댔다. 순간 살짝 원망스러웠다. 마지막까지 애매하게 다가온 I사가.


그날밤 나는 한 달 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한 달 동안은, 미국에서 연락이 오면 뛸 듯이 기쁠 것 같았다. 오매불망하던 미국행 티켓을 받아 들고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된 양 광란의 파티라도 열 기세였다. 하지만, 그 한 달의 기다림이 내 마음을 한없이 가난하게 만들었다. S사에 입사했을 때처럼 나는 내 능력만으로 그 길을 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자의 은혜일 수도, 행운의 여신이 보내준 미소일 수도, 수호천사의 강림일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 들뜨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다음 단계들을 준비했다. 연봉 협상부터 난 한국인 특유의 겸양의 미덕을 보여줬다. 현재 그리고 희망 연봉을 솔직히 다 말했고, 희망 연봉에 살짝 밑도는 금액에도 순순히 도장을 찍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평소에 잘 읽지도 않는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이 행동을 이후 미국에 건너와서 두고두고 가슴을 치고 후회했다)




"미국에는 왜 가려고 하십니까?"


미 대사관 영사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왜'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내가 제출한 백 페이지가 넘는 증빙서류는 넘겨보지도 않았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그가 풍기는 묘한 위압감에 살짝 긴장감마저 들었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아내는 딸아이를 안고 내 옆에 서 있었다.


비자 발급의 마지막 단계는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받는 인터뷰였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를 맞으며 아내와 난 광화문에 위치한 대사관에 들어섰다. 아내는 딸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있었고, 나는 손에 두툼한 서류 뭉치가 담긴 플라스틱 파일을 꼭 쥐고 있었다. 미국 취업 비자 증빙 서류였다. I사의 로펌 협력사와 두 달 동안 작업해 미 이민국으로부터 승인받은.


대사관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마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방에 입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참 많구나. 나 말고도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이..' 유학, 관광, 출장, 파견, 취업, 이민 그 어떤 이유든 자신만의 목적으로 미국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갑자기 쓸쓸해졌다.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미국이 뭐 대단한 나라라고 이렇게 제발 들여보내 달라는 사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몇몇 질문을 받았지만 영사와의 인터뷰는 몇 분도 채 안 걸렸다. 비자 스폰서가 확실했고 미 이민국의 승인이 명시된 서류가 있으니 특이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나 예약한 시간에 늦을까 아이를 챙겨가며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 허탈해질 만큼. 늦으면 안 된다며 아침부터 아내를 채근했던 것이 괜히 미안했다.


'미국에는 왜 가려고 하십니까?'라는 영사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과연 잘한 결정인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내와 대사관을 나왔을 때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저 하늘만큼이나 우리 가족의 앞날이 화창하길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예나 엄마, 나 드디어 S사에 퇴사 통보를 할 수 있게 되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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