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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Nov 14. 2023

엔지니어 성장 로드맵 (한국vs미국)

한국과 미국에서 꾸는 생명 연장의 꿈


한국의 엔지니어 커리어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 후 사기업에 취업해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시간에 따른 성장 로드맵은 <그림 1>과 같을 것이다. 여기서 설명의 편의상 '전통적인 직급체계'에 기준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산업군, 규모, 회사에 따라 직급명, 직급체계가 천차만별이다. 또한 최근 한국 기업들에서도 직급 파괴 바람이 불고 있어 직원들은 '홍길동 님'과 같이 상호 간에 직급으로 호칭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반화시켜 하나의 그림으로 도시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호칭을 통일하고 직급을 통폐합해도 내부적(인사적)으로는 '전통적 직급에 준하는 단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김개똥 님'이라고 부르지만 김개똥 씨는 '과거의 책임 연구원에 해당하는 직급을 갖고 있다'는 식이다. 따라서 편의상 과거의 대기업 직급체계에 준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림 1. 한국 대기업 엔지니어의 보편적인 성장 로드맵 = 기구한 엔지니어의 일생.



사원 (20대 중반~후반)


학부 졸업 후 성공적으로 취업관문을 뚫었을 때 사회에서 처음 갖는 직급이다. 당연히 업계경력은 없다. 이 시기에는 사수로부터 업무를 배우면서 '팀의 온갖 잡무'를 담당한다. 사수가 할당해 준 모듈을 구현하거나 유지보수하는 일을 주로 한다. 사원 단계에서는 '빠르게 업무를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원으로 4년 정도 보내면 다음 직급인 선임(대리)으로 진급하게 된다. 만일 학부 졸업 후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면 이 시기에 석사/박사과정 중이다.


선임 (대리, 20대 후반~30대 초반)


업계에서 4년 정도 경력을 보내고 어느 정도 실무가 익숙해진 단계다. 그렇다고 사원과 업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차이는 더 이상 사원 시절처럼 사수로부터 세세한 지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코드를 개발해야 한다. 때때로 후배 사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4-5년 후 다음 단계로 진급한다.


책임 (과장, 30대 초중반~30대 후반)


업계 경력이 8년을 넘어가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팀이 개발 중인 시스템을 잘 파악하고 있고, 조금씩 주도권을 가지고 개발에 참여한다. 담당하는 시스템의 스케일도 커지고, 거시적으로 시스템을 설계 후 모듈을 부사수에게 할당하곤 한다. 빠르면 이때부터 팀장으로 관리직 트랙을 탄다. 유관 부서와 협업하면서 사내 외 네트워크도 넓어지고 엔지니어로 가장 원기왕성하게 일하는 단계다. 대략 이 시기를 8년 정도 보내게 된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입사를 하게 되면 통상 이 직급부터 시작한다.


수석 (부장, 40대 초반~?)


업계 경력이 16년이 넘는 베테랑 엔지니어 단계다. 그동안 사내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겪었고, 다양한 스킬 셋도 쌓여있다. 사외 내 인맥도 문어발식으로 뻗어있다. 다만 이 단계부터는 같은 부장급 엔지니어라도 진로가 분화되기 시작한다. 일찍이 관리자 트랙을 타서 소규모(5~6명)부터, 그룹 수준의 팀(20~30명)을 이끄는 중간 관리자인 경우가 많다. 실무는 거의 손을 떼고 프로젝트, 팀원관리가 주된 업무가 된다. 


계층적 조직 구조이기에 당연하게도 수석 연구원들 중 일부만이 팀장, 그룹장을 맡는다. 따라서, 관리자 트랙을 타지 않아 보직이 없는 수석들은 인사권, 평가권이 없기에 조직 내 입지가 약해진다. 베테랑 엔지니어로 실무를 계속하면서 후배들을 이끌거나 소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기술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보직 없는 수석 연구원들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없다고 보면 된다. 정년까지 무탈하게 회사에 다니는 것만이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길이다.


회사에 기여한 바가 큰 그룹장들 중 일부만이 비로소 임원으로 승진하게 된다.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룹을 이끌어 제품화에 기여가 큰 연구 실적, 회사 매출에 기여가 큰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기술력, 발표력, 리더십, 정치력이 출중해야 하며, 자신이 이끄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임원 진급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다. 


개인 트랙 레코드(Track Record: 업적)상에 단 한 번의 프로젝트라도 실패 기록이 남는다면 임원 승진에서 멀어지게 된다. 조직 개편으로 담당 조직이 없어지거나 타 팀에 흡수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보직 없는 수석 연구원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이후는 치킨집?


사실 사내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조직 내에 보직 없는 수석 연구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원, 선임, 책임 단계에서 일찌감치 새로운 기회를 찾아 퇴사하는 인력들도 많고,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일찌감치 정리해 특허, 인사, 전략부서로 전직하는 경우들도 많다. 오랜 조직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내에서 제2의 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과거에는 보직 없는 수석 연구원으로 정년(55세~60세)까지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엔 학령인구 감소,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해지면서 IT업계에 실력 있는 엔지니어의 수가 줄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정년까지 실무자로 남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베테랑 엔지니어를 대우해 주는 조직 문화가 조성되면, 미국 회사들처럼 '개별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라는 또 하나의 엔지니어 커리어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임금 피크제가 적용된 법정 정년 60세 이후로는 물리적으로 회사에 남아있을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임원에서 사장단까지 승진하지 않고선 말이다. 



미국의 엔지니어 커리어


미국 테크 기업의 직급(통상 레벨이라고 부른다)은 일반화시켜 도시화하기가 더 어렵다. 통상 Engineer, Senior Engineer, Pricipal Engineer 등으로 부르곤 하지만, 이는 표면상의 타이틀이며 내부적인 레벨명은 회사마다 또 다르다. 다만 업계에서의 경력에 준하여 회사 간 타이틀을 매칭하는 테이블이 존재하는데, 동종 업계 이직 시 직급을 맞추기 위함이다.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http:://levels.fyi를 참고하면 된다. <그림 2>는 해당 사이트에서 도출한 대표적인 5대 빅테크 기업인 FAANG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급 체계다.


그림 2. FAANG사의 직급 테이블


그림처럼 각 회사마다 엔지니어의 레벨을 구분하는 명칭이 다르지만, 각 레벨별로 상호 간 매칭되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도에 따라 이직 시 전 직장의 레벨을 기준으로 새직장에서의 직급 협상을 하게 된다. 다만 위 테이블은 해당 사이트에서 회원들이 입력한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분류한 테이블일 뿐, 각 사마다 경쟁사와의 직급 매칭 테이블은 별도로 존재하니 이를 맹신하지는 말자. 


<그림 3>은 설명의 편의를 위해 Google의 직급, 타이틀을 기준으로 그룹화시킨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그림 4>에서 미국 테크회사의 엔지니어 로드맵을 도시화하였다. 


그림 3. FAANG사의 직급체계의 일반화


그림 4. 미국 테크 회사 엔지니어의 보편적인 성장 로드맵 = 누가 먼저 은퇴하느냐의 싸움


주니어 엔지니어 (Junior Engineer)


학부를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시작할 때 주어지는 직급으로, 한국 회사의 사원급에 해당한다. 각사마다 시작하는 레벨의 숫자가 1이 아닌 이유는 더 하위 레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부생 신분으로 인턴으로 참여한 경우다. 주니어 엔지니어는 무엇보다 빠른 습득력이 중요하다. 코드에 대한 솔루션의 일부를 할당받고 상위 레벨 엔지니어에게 보고한다.


시니어 엔지니어 (Senior Engineer)


3-4년 정도 성공적으로 주니어 시절을 보내고 고과를 잘 받으면 시니어 엔지니어로 진급을 하게 된다. 업무 범위는 주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유사하다. 개인의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에 상위 엔지니어로부터 최소한의 지도하에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해야 한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이 시점부터 미국 회사의 무서움이 나타나는데, 적정 기간 내 시니어 엔지니어로 진급을 하지 못한 주니어 엔지니어들은 레이오프 시즌시 1차적인 해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성장할 수 있는 엔지니어만 남기겠다는 마인드다. 


스텝 엔지니어 (Staff Engineer) 


6~7년 이상의 경력이 쌓인 매니저급 직급이다. 이 레벨부터 엔지니어는 매니저 직군으로 선회하기도 하며, 기술 트랙에 남아서 팀 내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주니어 엔지니어와 최고 경영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상위 팀이 할당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 팀을 이끌게 된다. 


여기서 관리직인 매니저와 기술직에 남아 리더십을 발휘하는 테크 리드로 역할이 분화된다. 테크 리드는 일반 관리 업무를 맡지 않고, 순수 기술력만으로 팀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다. 공식적인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동료 팀원들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팀 대표성도 높아져 경영진에게 노출도가 증가하며 유관 부서로 영향력이 확장되는 단계다. 기술력뿐 아닌 발표력, 커뮤니케이션 등 소프트 스킬에 대한 필요성이 늘어난다. 따라서 스텝 엔지니어 레벨로의 진급 자체도 꽤 난이도가 높다. 


프린시펄 엔지니어 (Principal Engineer)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이 쌓인 디렉터급 직급이다. 한국 회사에서 '수석 연구원'을 영문으로 표기할 때 Principal Engineer으로 번역하곤 하는데, 미국의 Principal Engineer는 사실상 한국 대기업의 수석 연구원급보다 훨씬 높은 직급이다. 준 임원에 가깝다.


스텝 엔지니어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트랙 레코드를 여럿 가지고 있고, 자사 기술을 표준화에 포함시키는 등 업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업적이 있어야 한다. 직제상으로는 자신의 밑에 고정 조직을 두지는 않지만 프로젝트가 셋업 되면 조직을 넘나들면서 엔지니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통상 제품을 구성하는 시스템에서 큰 블록을 하나 책임지고, 이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하위 엔지니어들을 통솔하게 된다. 따라서 상당히 도달하기 어려운 직급이다.


디스팅귀시드 엔지니어 (Distinguished Engineer)


엔지니어 트랙으로서는 거의 마지막 단계로 임원에 준하는 위치다. 기술적으로 회사의 비즈니스에 큰 기여를 한 경우 부여된다. 사내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았을 때 도달하는 직급이다. ACM, IEEE Fellow에 선출되는 등 이미 학계나 동종 업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상태다.


그 이후는 명예로운 은퇴?


회사마다 상이하지만 사실상 Principal 직급부터 상당히 도달하기 어려우며(거의 한국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난이도) Staff Engineer에서 은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매니저가 아닌 기술 직군이라고 해도 Staff  Engineer부터는 테크 리드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상위 단계 진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가 아니더라도 엔지니어로서 실무를 놓지 않는다면, 일정 레벨까지 진급하고(Terminal Level) 은퇴할 때까지 실무자로 남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레이오프의 칼바람을 잘 피할 수 있을 만큼 퍼포먼스를 꾸준히 보여야 하겠지만. 


한국처럼 법정 정년도 없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개별 기여자(IC, Individual Contributor)로서 실무 엔지니어로 개인이 정한 은퇴 시점까지 일할 수 있다. 실리콘 밸리 테크 회사들에서 백발의 나이 든 엔지니어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70세가 넘은 엔지니어도 본 적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계약직으로 전환해 일하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도 한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만큼 기억력, 생산성은 떨어지기에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의 엔지니어의 성장 로드맵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최대한 일반화시켜 보았지만, 양국 모두 회사마다 기업 문화, 내규, 진급 기준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실제 사실과 편차가 있을 수 있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진행 중인 독자에게 향후 진로를 예상하는 데 있어, 큰 틀에서 양국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생애 경력 경로로 보면 엔지니어의 일생은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 여느 직군처럼 조직내 일원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전력을 다하는 삶일 뿐이다.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성과를 내며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점차 자신의 커리어가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이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덕업일치를 일궈내는 삶. 그것이 엔지니어라는 업의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 각 단계별 성장을 이뤄내는데 필요한 역량을 살펴보도로록 하겠다. 



- 예나빠


ps. 본 글에 대해 양국의 현업자들 중 혹시 반박사항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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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실리콘 밸리 - 어느 중년 엔지니어의 곤궁한 실리콘 밸리 이직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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