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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Nov 20. 2023

글로벌 엔지니어 스텝업!: 학부생 단계

모든 일엔 기초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글을 통해 한국, 미국 엔지니어의 일생에 대해 다뤘다. '공학도'로서 엔지니어 커리어의 첫발을 뗄 때부터 노병 엔지니어로 은퇴하는 시점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빠르게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었다 (웃음). 오늘부터는 각 단계(직급, 신분 등)별 또는 연령대별로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덕목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시간으로 학부 시절의 역량 강화 방안을 논할 것이다.



이에 앞서 우선 최종 목표인 '글로벌 엔지니어'가 과연 무엇인지 독자와 내가 합의해야 할 것 같다. 엔지니어로서의 성공은 개인별 가치관에 달려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조직의 정점을 찍는 최고 경영인이고, 누구에게는 가늘고 길게 생명을 연장하는 백발의 실무 엔지니어일 수 있다.


여러분의 연령에 따라 누구에게는 생생하고 누구에게는 아득할 수도 있지만 잠시 대학시절을 기억해봤으면 한다. 비록 졸업을 앞둔 시점에 현실이 독자를 그렇게 몰아갔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취업만을 목적으로 공과대학의 문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학도로서 피를 끓게 만들었던 순간이 한 번쯤 있지 않았던가?


암호와 같던 모니터의 코드 한 줄이, 오색찬란한 PCB 기판의 회로가, 스티브 잡스의 마법 같은 프레젠테이션이 어쩌면 여러분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는지 모른다. '의대가 아닌 공대에 오길 잘했어'라고 정신승리하는 수준은 아니어도,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것에 희열을 느꼈던 때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공학이 그런 실용 학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로 세상을 조금은 낫게 만드는 진정한 홍익인간이다. 자부심을 갖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모습은 '자신의 일에서 충분히 보람을 느끼고, 조직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지니어가 아닐까 싶다. 연 $1M를 벌어들이는 탑티어 엔지니어나 임원이 아니어도 좋다. 은퇴하는 시점까지 열정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에서 덕력을 뿜어내는 엔지니어, Tech-savvy(기술 발전에 적응이 빠르고 능통한)함을 견지해 후배들을 기술력으로 이끌 수 있는 존경받는 선배 엔지니어말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엔지니어는 이런 모습이 아니다.


여기에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안타깝게도 이런 덕업 일치를 꿈꾸기엔 한국의 제반사항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제조업 마인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기업들은 실체 없는 혁신을 연일 부르짖고, 국가는 새로운 유행이 도래하면 지속불가능한 대규모 사업을 습관적으로 펼친다. '해커 10만 양병', '메타버스 전문가 양성', '반도체 혁신인재 양성', 'AI 융합인재 양성'. 양성된 그 많은 인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유행을 좇는 환경에서는 업에서 보람을 찾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일에서 만족감과 꾸준한 의욕을 불태우려면 우선 자신의 경력 경로가 예측 가능해야 한다. 단계별, 시기별로 일정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종국에는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제반 환경말이다. 트렌드가 변하면 이를 누구보다 빠르게 접할 수 있고 여유롭게 이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은 바로 그 물결의 진원지에서만 갖춰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오덕 엔지니어를 지향하려면 필히 세계 무대를 염두해야 한다.



서론이 길었다. 정리하면 우리에게 '글로벌 엔지니어'란 미국(이 아닌 제3국이어도 좋다) IT 업계에서 실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일에서 만족과 보람을 느끼고, 기술력으로 조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지니어다. 그런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를 목표로 상정하고, 각론으로 들어가 보고자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는 이런 모습이다. 실리콘 밸리의 중추는 이들이다. 이미지 출처=드라마 <빅뱅 이론>


오늘은 학부생 시기에 필요 역량을 개괄할 것이며 다음 글부터 대학원생, 현업자 시기를 다루겠다. 그리고 각개별 역량에 대해서는 이후 본 브런치 북의 각 챕터로 더 자세히 기술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필히 특정 시점에 미국 진출을 시도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또 별도의 글로 소개할 것이며, 여기서는 미국 진출전까지 한국에서의 각 시기별 역량 강화 방안을 이야기할 것이다.




학부 시절은 가장 중요한 때다. 어떠한 경험과 경력도 존재하지 않는 백지와 같은 상태지만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자원을 가진 시기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엔지니어 전 생애 경력 경로를 통틀어 가장 가용 시간이 넘치는 시기다. 역량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손에 쥐어진 것이다. 남은 것은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가에 달려있다.


물론 피 끓는 청춘은 바쁘다. 학업, 과제, 알바, 연애, 사랑, 우정, 여행, 게임, 취미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젊음의 표상이다. 이를 누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취준생이 되면 고스펙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게 될 텐데, 이 시간을 단기 관문 돌파용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 커리어를 위해 쓰라는 것이다.


사랑해요. 공대생.


1. 전공


일단 저학년 때 배우는 '수학 과목들'은 무조건 탄탄히 해놓아야 한다 (최소한 공업수학, 선형대수까지는). 고교 때 수포자로 어찌어찌 공대에 들어왔고, 그동안 요리조리 피해 살았다면 마음을 다시 잡기 바란다. 이공계로 진학한 이상 그리고 향후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원한다면, 더 이상 퇴로가 없다. 학부시절 수학을 제대로 닦아놓지 않는다면 이후 엔지니어/연구원으로 살면서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온다.


사실 고교시절의 수학과는 목적과 공부방법이 다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용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국 공통으로 공학은 수학으로 표현되고 이를 흡수해야 하는 공학도에게는 수학은 일종의 도구와 같다. 즉, 전공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히 수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응용과 추리,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


그리고 고학년 때 배우는 '전공'만큼은 확실히 해둬야 한다. 이때 배운 지식이 향후 20-30년간 행하게 될 실무에 기초가 되어준다. 모든 전공을 다 잘할 수 없다면 최소한 핵심 전공과목만큼은 무조건 A+를 받겠다는 각오로 공부하자. 컴콩/컴싸 계열이면 알고리즘, 자료구조, 컴퓨터구조, 전기전자 계열이면 전자기학, 회로이론, 전자회로와 같은 과목들이다. 아무리 기술 트렌드가 바뀌어도 모든 분야의 근간이 되는 전공과목들이다.


도대체 왜 이런 과목들을 배우는지 의구심도 들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데 왜 골치 아픈 논리 회로, 컴퓨터 구조를 배워야 할까. 그 소프트웨어가 어디서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짤 수 없기 때문이다. 졸업 후 실무를 하다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학부 커리큘럼이 마법과 같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2. 영어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또다시 강조하지 않겠다. 영어로 말하고, 읽고, 쓰는 일은 엔지니어에게 떼려야 뗄 수없다. 입학 후 무조건 바로 시작하자. 공부법에 왕도는 없다. 여러분 만의 방법을 찾아라. 어떤 방법으로 하든 안 하는 것보다 낫다.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영어를 원어민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별도의 글로 다루겠지만,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취업을 위한 점수 확보용으로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이드라인을 하나 주자면, 졸업 전까지 OPIC AL 등급 획득을 목표해보길 바란다. AL은 스크립트 암기와 같은 꼼수나 편법으로 도달할 수 없는 단계다. 단언컨대 AL 등급까지 영어 수준을 높이면 실리콘 밸리 테크 회사 인터뷰는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경험담).


3. 실무


학부 시절 최선을 다하며 학업에 매진해 졸업해도, 안타깝지만 현업에 투입되었을 시 즉시 전력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만큼 학교와 기업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그래서 기업은 '즉시 전력'을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의 커리큘럼을 불평하고, 대학은 신입 재교육에 인색한 기업을 비판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본연의 목적이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전감 엔지니어를 배출하기 위해 대학이 취업 학원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 학문의 중요 기초 이론과 지식을 대학 때 배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배운다는 말인가.


지금은 내 말이 비합리하게 들릴 수 있다. 4년 내내 전공에 올인해도 즉전감 엔지니어가 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대학 그리고 교수가 원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전공 지식을 단단히 해놓는 것이 코딩 스킬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 간극은 스스로 메워야 한다.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어도 좋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고, 'Verilog HDL 설계' 과목을 이수해도 좋은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 프로그래밍과 설계 능력은 시간과 경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미국 컴싸 학부생들은 방학이 되면 인턴 자리를 알아보러 동분서주한다. 빅테크부터 스타트업까지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 현업 개발자들 밑에서 일을 배우려 한다. 이런 현장 경험이 그들을 한층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간혹 미국에 온 유학생들이 취업에 실패해 한국으로 유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노력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인턴십이 전무한 한국에서 학부생이 실무 경험을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각종 프로그래밍 동아리 활동, 커뮤니티 멤버십, 그리고 오픈소스 프로젝트 등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식은 부유하고 있고 이를 낚아 올리는 것은 노력에 달렸다.


특히 기회가 되면 오픈소스 활동은 반드시 해보길 바란다. 세계 각국의 기라성 같은 현업 프로그래머들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코드들이다. 코드를 읽고 분석하는 것만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그리고 코드를 커밋하고, 유지보수하는 환경에 익숙해 질 수 있다. 다 현업에서 사용하는 툴들이다.


한 번에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은 어렵다. 처음엔 주석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해, 혹시나 버그를 찾거나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한다면 조금씩 입지는 높아진다. 커미터(Committer, 남의 코드를 리뷰하고 머지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갈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컨트리뷰터(Contributer, 기여자)로 활동한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력이 되어줄 것이다.


4. 독서


엔지니어에게 왜 독서가 필요할까.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 즉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엔지니어 실무에는 논리적 사고, 분석적 사고, 추상적 사고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사고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무를 하다 보면 절반 이상의 시간은 문제 해결에 쏟는데, 소요 시간은 개인의 논리적 사고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설계한 프로그램, 회로가 의도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예상 가능한 원인을 가능한 많이, 빠르게 상정하고 하나둘씩 쳐내면서 찾아 나가는데 이 때 광폭의 논리적 사고가 큰 힘을 발휘한다.


실험 결과 데이터가 쏟아지면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현상을 파악하는 데에는 분석적 사고가 필요하며, 객관적인 개별 데이터를 종합해 아직 벌어지지 않은 현상에 대해 예측하는 데에는 추상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경쟁사의 제품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을 전망해 전략을 세우려면 이런 추상화 능력이 절대적인 것이다.


이런 사고력은 평소에 생각하는 습관을 꾸준히 기르고 훈련해야 발현될 수 있다. 그리고 훈련의 방법으로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텍스트를 읽어 내며 그 의미를 떠올리려 노력할 때 우리의 뇌는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비주얼로 장악된 디지털 시대다. 정보는 넘쳐나고 우리는 간단한 검색만으로 이를 빠르게 취한다. 그런데 검색으로 신속하게 알게 된 지식은 그만큼이나 빠르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영상과 이미지는 우리에게 상상의 여지를 앗아가고 사고의 과정을 생략시킨다. 명심하자. 우리는 그 디지털 기술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문학, 소설, 에세이, 자기 계발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 것이 좋은 엔지니어가 되는 첫걸음이다. '일 년에 백 권을 돌파하겠다'와 같은 당찬 목표를 세워보자. 학교 도서관을 수시로 방문해 저 모든 책들을 읽어 내리겠다고 다짐하자. 독서 습관은 향후 엔지니어 커리어를 밟아가는 여러분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엔지니어에게 독서의 순기능은 많다. 이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다룰 것이다.




자, 여기까지가 K-꼰대 엔지니어가 공학도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어쩌면 도달하기 어려운 미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시간'이라는 값비싼 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학부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모쪼록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자양분이 여러분의 젊음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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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정보전달/칼럼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 성장 로드맵 - 한국의 공학도/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연재중)

미국 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미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미국 연구원과 엔지니어의 길 - 미국 기업 연구원/엔지니어에 대한 정보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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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실리콘 밸리 - 어느 중년 엔지니어의 곤궁한 실리콘 밸리 이직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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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엔지니어 - 그래픽스 전공자 시선으로 바라본 미술사.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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