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빠 Nov 28. 2023

글로벌 엔지니어 스텝업!: 대학원생 단계

CV 관리를 시작하자


우리는 지난 글을 통해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학부시절에 집중해야 할 일을 다뤘다. 생애 경력 경로를 걸쳐 가장 가용 시간이 많은 시기로, 전공영어실무독서에 힘쓰라 했다. 스펙 쌓기 여념 없는 이들에게 어쩌면 내가 다소 무리한 미션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하자. 엔지니어 경력 경로 전체를 봤을 때 초기 단계부터 기초를 잘 닦으면 닦을수록 그만큼 최종 목표에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오늘은 그다음 단계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몇몇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향후 글로벌 엔지니어나 연구원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석사, 박사과정*들을 위한 것이다. 학부생들은 대학원의 진학 필요성 그 자체에 대해서도 궁금해할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다룰 것이다.


* 본 글은 미국 대학에서 유학 중인 한국 대학원생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양국의 대학원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브런치 북의 기준으로는 일단 미국 유학 중인 사실만으로 이미 글로벌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원생은 지도 교수의 지도를 잘 받고, 연구 열심히 하고, 신분 문제를 잘 해결한 뒤 알아서 미국 회사에 취업하면 된다. 


대학원 시절은 한마디로 카오스, 혼돈의 시기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시점에 기대했던 것은 '엘리트 공학도의 모습'일 텐데, 막상 대학원에 입학하면 삶은 완전 딴판이다. 단언컨대, 보살 같은 지도교수를 만나지 않은 이상 대학원에서의 시간을 100% '연구'로 보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석사과정 때는 지도 교수나 선배가 시키는 잡무, 조교, 코스웍, 세미나 등으로 바쁘고, 박사과정 때는 개인 연구 외에도 제안서, 보고서, 프로젝트나 팀 관리로 아주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그 와중에 온라인 게임도 해야 되고, 유튜브도 봐야 하고, 넷플릭스도 봐야 한다. 나이는 결혼 적령기를 치닫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소개팅과 연애도 해야 한다. 공과대학 건물 연구실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게다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취업에 성공한 동기들은 이미 사회인으로 적응해 돈도 모아가며 결혼 준비까지 착실히 진행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결혼은커녕 생계형 인건비로 근근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으니 '현실은 시궁창'과 같다며 심히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대학원 시절엔 멘탈을 잘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부 졸업 후 취업에 뛰어들지 않고 진학을 한 것은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이 학위든, 스킬셋이든, 스펙이든 말이다. 따라서 향후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가 될 여러분은 더욱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또한, 대학원생들, 특히 박사과정들이 재학 중 진로 때문에 심한 내적 갈등을 빚곤 한다. 졸업 후 교수가 되느냐 취업하느냐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학원 시절부터 경력은 다르게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렴풋이 '기회가 되면 학계로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연구와 논문 작성에 노력을 쏟다가, 졸업과 동시에 현실을 깨닫고 대부분 사기업에 취업을 하게 된다 (물론 취업 후 업계 경력을 몇 년 쌓고 교수 임용이 되는 방법도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신이 내려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진입 장벽이 무척이나 높기 때문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글로벌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백만 배 쉽다고 본다. 따라서 일찍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맞춤형으로 경력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자신의 이력서인 CV(Curriculum Vitae)를 관리해나가야 한다.



석사과정


석사과정은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한 2년이면 마치게 된다. 통상 1-2학기는 코스, 조교, 잡일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3학기부터 어찌어찌 주제를 잡아 연구를 진행하(는 척하)다 4학기에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한다 (정말 2년이 휙 지나간다!). 간혹 훌륭한 교수님, 박사 선배들을 만나거나 개인기가 출중해서, 석사 과정 중에 쓴 논문을 해외 저명 학회에 발표하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그래서 석사 과정 중에 연구 실적을 쌓는 것은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이후 업계에 진출해도 석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졸업 논문 자체도 개인 스펙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전공 지식을 더 뾰족하게 만들고, 실무 경험과 소프트 스킬을 늘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1. 전공


일단 대학원을 진학하면 자신의 지망에 따라 특정 연구실에 속해 지도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들이 향후 본인의 전문 분야가 된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대학원생들에게 코스웍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곤 하는데, 연구나 다른 일로 바빠서 상대적으로 이에 쏟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간/기말고사 때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시간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학부 때보다 학점도 잘 나온다. 


하지만, 코스웍은 자신의 전공 지식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기회다. 일단, 지도 교수 과목은 빠짐없이 잘 듣고, 개설된 다른 과목들 중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이 있거나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과목들을 잘 선택해 수강하자. 위에서 설명한 대로 코스웍에 쏟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수업 시간에 소화한다는 생각을 갖자. 그리고 수강 과목들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후일 미국 진출을 시도할 때 이력서인 CV (Curriculum Vitae)에 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능한 학점(GPA)을 잘 받아두는 것도 중요하다. 


2. 실무


석사 과정 중에 실무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은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산학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산학 과제는 연구실에서 연구비 펀딩을 위해 지도 교수가 국가나 산업계에서 수주해 오는데, 신규성 부재로 결과를 논문화 할 수 없는 개발성 과제도 많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석사 시기에는 연구 실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개발 과제는 실무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구실에 있는 장비, 개발/설계 툴을 가능한 많이 경험해 보고 익혀두자. 프로젝트 참여 실적, 보유 스킬셋 들은 모두 이후 개인 CV에 작성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산학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보면 실제 업계의 엔지니어들과 교류할 기회도 늘어난다. 과제 착수, 중간보고, 완료 보고 등을 위해 지도 교수를 따라 발주 회사에 방문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업계의 엔지니어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젝트 마감을 위해 해당 회사로 출근하며 단기간 개발에 참여하기도 한다. 특히 인턴제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 업계에서, 이러한 산학 프로젝트 참여 경험을 미국 회사의 인턴쉽 내지는 코압(Co-op: 계약직 직원)과 유사한 실적으로 CV에 기입할 수 있다. 


컴싸/컴공계열로 학부 시절에 코딩 스킬을 충분히 쌓아 놓지 못했다면, 석사 과정 중에 충분히 시간을 내서 보강하도록 하자. 대학원에서 코딩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3. 소프트 스킬


대학원생은 반은 학생, 반은 직장인과 같은 삶을 산다. 학부 때처럼 코스웍을 소화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직장인과 유사하게 일과시간에 '업무 (잡일, 연구 등등)'를 수행한다. 또한 지도 교수,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랩 생활을 하기 때문에 향후 회사에서 겪을 조직 문화를 일찍부터 경험하게 된다. 상사(지도 교수, 선배)를 대하는 방법, 동료나 후배를 지도하는 방법들을 알게 모르게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석사 과정은 회사로 따지면 엔트리 레벨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주로 지시받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주도적으로(Initiative) 일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연구 아이디어가 있으면 박사 과정이나 지도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까이더라도) 반박 시 자신의 논리를 갖춰 설득하는 방법을 키우는 것이다. 미국 회사에서는 주니어 엔지니들도 자신의 의견을 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런 적극적인 엔지니어가 더 빨리 성장한다.


또한 논문을 읽고 랩 세미나 등에서 청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기회를 점차 갖게 되는데, 이때부터 발표력을 키울 수 있도록 연습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랩 내에 발표 잘하는 선배, 동료들이 있다면 잘 벤치마킹하도록 하자. 업계에 나가면 프레젠테이션이 엔지니어의 능력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된다. 기술 발표를 위한 효과적인 PPT 작성 요령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4. 영어 & 독서


학부시기와 마찬가지로 영어와 독서는 여전히 중요하다. 여전히 Opic AL 등급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더욱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독서는 습관화시켜라. 평생 책을 놓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끊을 수는 없다면, 영상 청취 시간을 줄이고 텍스트를 보는 시간을 늘려가자. 



박사과정 


벌써부터 눈물이 나려고 한다. 박사과정들이 겪고 있는 고뇌의 시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석사처럼 2년만 랩에서 구르면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물론 석사 졸업도 최소한의 요건은 있다), 졸업을 하려면 학교마다 정한 졸업 요건(학회, 저널 논문 게재, 예비/본 심사)을 충족해야 하고, 지도 교수의 의견도 반영된다 (그만했으면 되었으니 하산토록 하라). 통상 4년 정도를 보는데, 능력 여부에 따라 조기 졸업도 가능하지만 운이 나쁘면 몇 년 더 걸리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 온갖 고뇌의 시간이 찾아온다.


특히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이 뒤따른다. '박사'로 졸업한다는 의미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위과정 동안 그 정도의 실적을 쌓지 못하면 졸업 후 진로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또한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졸업 시점에 업계에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그만큼 진로의 문이 좁아질 위험도 있다. 전문가가 될수록 갈 곳이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멘탈이 붕괴된 박사 과정의 전형적인 예. 이미지 출처=인터넷 짤을 대놓고 배껴 그린 예나빠 태블릿


따라서 통상 박사 2-3년 차부터 기업의 산학 장학생제도를 이용해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해 둔다. 장학금도 받으면서 연구에 매진해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것이다. 졸업할 즈음 더 좋은 기회를 찾아온다면 기업에서 받았던 장학금은 돌려주면 그만이다 (다 써버렸다면...). 그 새로운 기회를 미국 진출로 상정하고 있다면, 졸업 때가 아니라 학위 과정에서부터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일단 한국의 박사 학위 소지가 미국 업계에 지원해 볼 수 있는 직군은 1)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2) 리서치 엔지니어, 3) 엔지니어 세 가지 정도다. 


1.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직군


'연구'를 본인의 업으로 하는 경우다. 아마도 대학원 시절 했던 '연구라는 일'이 본인의 적성에 잘 맞다고 생각하는 많은 박사과정들이 희망할 직군일 것이다. 엔지니어 직군은 곧 출시될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개발하는 일이지만, 연구원 직군은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일이다. 각 직군마다 매력이 있는데, 엔지니어는 전 세계에 출시되는 제품 개발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 연구원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는 연구를 업으로 하는 직군이라 자연스럽게 '박사'학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회사의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직군은 최소 자격 요건으로 요구되는 것이 박사학위다. 다만, 사내에서도 리서치 부서는 상대적으로 소수로 꾸려진 작은 부서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미국 전역으로도 엔지니어 직군에 비해 채용 공고도 잘 뜨지 않는다.


게다가 연구팀에서 새로운 충원이 필요한 경우, 온라인 공고를 통한 이력서 접수로 채용(일명 공개 채용)하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팀에서 협력 중인 미국 대학, 팀원의 지인 추천, 그리고 학계에 가시성이 높은 (학회에서 괜찮은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 이름이 조금은 알려진) 박사과정에게 직접 컨택하는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한다. 


따라서, 미국 회사의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면, 박사과정 중에 학계 가시성을 높여서 이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도록 경력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역시 '논문'이다. 그런데 이때 논문 작성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저널보다는 컨퍼런스


전 세계적으로 SCI(인용 지수)를 따져가며 저널 실적을 요구하는 기관은 대한민국의 대학밖에 없다. 교수 채용의 기준으로 과거 N 년 내 SCI 저널 논문 몇 편 등등의 조건을 걸고 정량적으로 점수화한다. 이는 대학이 지원자의 출판 논문을 정성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미국 테크 기업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를 뽑을 때는 그 어디서도 이런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저널이든 컨퍼런스든 각 분야별로 자주 인용하는 논문 출처가 있다. 학계 인사 간 나름대로 저명하다고 인정하는 학회 같은 곳들이다. 이런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면 관련 업계의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띄게 된다. "오,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가? 누가 쓴 거지? 한국의 모 대학에서? 오, 이 친구 계속 Follow 해야겠네, 이 친구 웹페이지 있나? 북마크 해야지, 다음에 인턴을 뽑을 때 연락해 볼까?"라는 식이다.


그리고 미국 테크 기업의 연구팀들은 저널 논문은 그다지 읽지 않는다. 연구도 당사 제품 상용화를 염두하기 때문에 항상 시의성에 민감하다. 저널은 제출, 리뷰, 출판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그 논문의 아이디어는 출판시점에 이미 낙후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항상 학회 논문 위주로 연구 트렌드를 쫓는다. 해마다 연초면 일 년 동안 있을 주요 컨퍼런스 일정을 스케줄하고, 일정에 부합하는 컨퍼런스에 맞춰 논문 작성 계획을 세운다. 


물론 한국의 대부분의 대학에서 박사 졸업 요건으로 저널 논문 출판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최소한의 숫자는 맞추고, 나머지 연구 실적은 미국 테크 업계 리서치 팀에게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서 저널보다는 컨퍼런스 논문 제출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컨퍼런스 논문 제출에 집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형보다는 소형 컨퍼런스


컨퍼런스에 논문을 제출해야 할 이유는 미국 현업 연구원들과 면대면 네트워킹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출한 논문이 Accept 되면 해당 학회에 참석해 청중 앞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이 청중에는 희망하는 연구 기관에서 온 연구원, 연구팀장 등등이 앉아있다. 그래서 이 논문 발표는 연구자로서 일종의 쇼케이스와 같다. 발표력, 영어로 청자와 Q/A 하는 능력을 어필하는 것이다. 이때 청중에 있던 미국 연구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면 글로벌 오덕 연구원이 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네크워킹 측면에서, 학회 저명도와 별개로, 수천 명이 참석하는 대형 컨퍼런스보다는 참석자가 2~3백 명 수준의 소형 컨퍼런스에 논문을 제출/참석하는 것이 좋다. 대형 컨퍼런스는 다양한 주제로 수십 개의 세션이 동시에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많은 청중에게 논문을 발표할 수도 있지만, 세션이 끝나면 청중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음 세션 장소들로 흩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전에 약속을 잡지 않은 이상 미국 연구원들과 네트워킹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소형 컨퍼런스는 단일 세션으로 프로그램이 꾸려지고, 2-3일 정도 되는 일정 내내 한 장소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참석자들을 한 곳에 가둬둔다(?). 세션 간 쉬는 시간, 연회 등등의 시간에 참석자들과 자연스럽게 부대끼며 네트워킹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학회에 저자로 논문을 발표에서 청중에 좋은 인상을 주었다면 상대방 측에서 먼저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게 된다. 절대적으로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한국에서 대학원 시절에 논문이 Accept 되든 안 되든 학회에 참석할 기회를 얻는다면, 해외여행을 간다는 흥분감에 '일정 이후 어디로 관광할지'를 고민하지 말고, 학회 기간 동안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안면을 트는 것이 본인의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아직 교수도 아니고, 알려진 업계의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도 아니고 이제 학회 출장을 다니기 시작한 박사과정일 뿐이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다. 이런 악조건인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할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논문 주저자로 학회에 참석하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논문 저자로 발표할 기회를 갖게 되면 청자를 끌어당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논문 주제가 흥미로우면 흥미로울수록 더 많은 주목도를 얻는다. 따라서 애초 연구 계획 시점에 주제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기존 논문에서 점층적인 아이디어 개선보다는 새로운 접근을 통한 방법, 해법이 신선하면 청중에게 각인효과가 높아진다. 


영문 명함을 파라: 사실 영미권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문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아직 회사 소속의 전업 연구원도 아닌데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상관없다. 소속기관은 학교, 학과, 랩 등을 기술하고 직급은 "Phd. Candidate"로 표기하면 된다. 연락처, 이메일 주소 등등이 담긴 명함을 첫 대면 시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일단 명함을 주면 상대방은 그 자리에서 한 번쯤 살펴보기 마련이고, 다음 대화의 주제도 따라온다. 그리고 그 명함은 그 연구원의 가방 한편에 담겨 가고, 그가 회사에 복귀해 출장 보고회를 가질 때 팀원에게 소개할 수도 있다. 


학회 출장 전 주요 인사에게 인사 메일을 보내라: 학회 참석이 확실시되는 미국 테크 기업의 주요 연구원, 연구팀장등의 이메일을 검색을 통해 찾아보고, 가능하면 학회 참석 전에 메일로 인사를 해보도록 하자. 별다른 내용은 필요 없다. 귀하의 연구, 귀사팀의 연구실적이 훌륭해서 항상 follow 하고 있다는 입에 발린 칭찬으로 시작해서, 내가 이번 학회에 이런 논문을 발표하게 될 텐데 혹시 귀하도 학회에 참석하시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면 충분하다. 대부분 반갑게 답변을 주기 마련이다. 사전에 한 번이라도 메일을 주고받고 나면 현장에서 만났을 시 어색함이 훨씬 반감될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해마다 같은 학회에 참석할 수 있다면 좋다. 같은 학회에서 만난 인사들을 반복적으로 만날수록 인연은 깊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식 대학원 문화에서는 논문 편수에 연연하곤 하는데, 업계, 학계에 알려진 저명한 소형 컨퍼런스에 집중적, 반복적으로 논문을 제출해서 미국 연구원들과 접점을 늘리는 것이 확률이 높이는 길이다. 그렇게 학위기간 동안 가시성을 높일 수 있는 논문을 제출해서 CV를 잘 관리해 놓으면 인턴쉽, 채용의 기회는 높아진다. 


선술 했듯이 미국 테크 기업에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를 뽑을 때는 1차적으로 학계에서 검증된 (즉 이미 그들 뇌리에 남아있는 논문을 발표한 이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곤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내 가시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그들이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도록 랩 웹사이트에 개인 웹페이지를 만들어 연구 프로젝트, 논문 실적, 데모 영상 등을 올려두는 것은 필수다. 명심하자, 미국 현지 유학생들과 경쟁해 미국 회사에 연구원으로 취업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2. 리서치 엔지니어 직군


간혹 회사마다 리서치 엔지니어라는 타이틀로 인재들을 채용하곤 한다. 리서치 엔지니어의 본업은 연구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연구팀에 소속되어 리서치 사이언티스틀과 협업을 한다. 즉,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토타입 개발과 같은 엔지니어링일을 전담하는 인력들이다. 간혹 대학원 내에도 연구하고 실험하고 논문 쓰는 것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고, 코딩하고 개발하는데 매우 능력을 발휘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성향의 인재들에게 어울리는 직군이다. 


따라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구원들이 논문을 쓸 때 프로토타이핑을 돕고 실험결과를 제공하는 일들을 한다. 논문을 주저자로 쓰는 일은 없고, 공저자에 포함되기도 한다. 따라서 실무 능력 + 연구 분야의 높은 이해도를 모두 가져야 한다. 


3. 엔지니어 직군 (아키텍트, S/W H/W 엔지니어 등) 


실리콘 밸리의 빅테크들은 '엔지니어' 직군도 박사학위 소지자를 선호하는 편인데, 한 분야의 전문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경력직 엔지니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업의 성격상 논문, 연구 실적은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따라서, 업계에서 5년 정도를 보낸 엔지니어 정도의 스킬셋과 실무 능력을 장착하고, 학위 기간 동안 갈고닦은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의 도메인 지식, 업계/표준화 동향, 산학 프로젝트 경험을 위주로 이력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나가면 된다.



이외에 박사과정 동안 다양한 제안서, 보고서를 쓸 기회(?)를 맞게 될텐데, 내 연구 이력에 도움도 안된다며 불만가질 필요가 없다. 논문과 별개로 기술 문서(Technical Report) 작성 능력은 업계에 나가면 좋은 엔지니어/연구자가 되는 필수 덕목중 하나다. 논리적인 글쓰기의 기회로 삼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자, 여기까지가 미국에서 일하는 전직 리서치 사이언티스이자 현직 K-꼰대 엔지니어인 내가 한국의 공대 대학원생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여러분이 뜻한 바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일단 뒤는 돌아보지 말자. 온갖 불합리한 일들도 발생할 수 있다. 멘탈을 잘 잡고 최단 경로, 최단 시간 내에 졸업을 목표로 하고, 그 기간 내에 효과적으로 내 실적/실무 능력을 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온다.


모쪼록 좋은 글로벌 오덕 연구원/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자양분이 여러분의 젊음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 예나빠



엔지니어 커리어에 관한 질문은 언제든 아래 글에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예나빠 브런치 북/매거진 소개


자기계발/정보전달/칼럼

글로벌 오덕 엔지니어 성장 로드맵 - 한국의 공학도/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연재중)

미국 오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미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경력자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미국 연구원과 엔지니어의 길 - 미국 기업 연구원/엔지니어에 대한 정보 전달

실리콘 밸리 북마크 - 실리콘 밸리와 한국의 IT업계를 이야기하는 칼럼


에세이

내일은 실리콘 밸리 - 어느 중년 엔지니어의 곤궁한 실리콘 밸리 이직담 (완).

미국에서 일하니 여전히 행복한가요 - 미국 테크 회사 직장 에세이

미국에서 일하니 행복한가요 - 미국 테크 회사 직장 에세이 (완)

미술관에 또 가고 싶은 아빠 - 미술 + 육아 에세이

미술관으로 간 아빠 - 미술 + 육아 에세이 (완)


교양

미술관에 간 엔지니어 - 그래픽스 전공자 시선으로 바라본 미술사. 교양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