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어쩌다가.
애플이 미국 반독점법 위반으로 법무부로부터 제소를 당한 걸로 시끌시끌하다. 그동안 앱스토어, 메신저, 기기, 앱 등에서 타사 앱 출시를 방해하고, 타사 기기와의 연동을 제한하는 등 아주 구질구질하게 굴더니 이번에 제대로 걸린 셈이다.
무엇보다 메신저에서 안드로이드 폰에서 온 문자를 느리게 만들거나, 색깔을 바꿔버리는 짓은 참으로 졸렬했다. 단톡방에서 메시지 색만으로 안드로이드폰 유저임을 대놓고 드러내게 만드는 것인데, 미국 애들은 이것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단다.
이런 치졸한 행보로 영업이익을 올려야 할 정도로 애플이 망가졌나 싶다. 애플카는 좌초되었고, AI 엔진은 비루하게 구글에게 구걸 중이며, 비전프로는 재고세일 할 운명이다 (개인적으로 XR기기는 글라스로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유일하게 남은 애플의 혁신은 M시리즈 AP(Application Processor) 뿐이다.
2010년대 한국에 있을 때 '애플'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레퍼런스 경쟁사였다. 각고의 노력이 담긴 연구 결과 X를 사업부에 들고 가도 사업부는 늘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시장성 없다. 그딴 거 필요 없다'던 사업부가 곧바로 태세전환을 할 때가 있었는데, 바로 '애플'이 같은 것을 시장에 내놓을 때였다. 그 이후부터는 무리하게 회사에 선빵을 날리기보다 준비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애플'이 먼저 내놓기를.
그렇게 애플의 '혁신'은 기술 전략, 시장분석을 뛰어넘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카피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스티브잡스가 2011년 갤럭시 UI를 '카피캣!'이라고 일갈했을까. 예전에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애플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그랬던 애플이 어쩌다가 이지경이.
미국은 독과점을 아주 중한 범죄행위로 보고 있어서, 그 정도가 심하면 회사를 쪼개버리는 초강수를 둔다. 경쟁업체가 시장에 더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시장에 경쟁이 활발해지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그런데 애플이 쪼개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애플의 미친 변호인단이 어떻게든 막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빅테크에 전례가 없다. 과거 마이크로 소프트나 구글도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당했지만 결국 기업 분할은 어떻게든 피해냈다.
이번 만큼 미국 법무부를 응원해본다. 한번 본보기 사례를 만들어줬으면. '탐욕이 종국에 필멸'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말이다.
아,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전히 온가족의 폰은 아이폰이고, 아내는 외출할 때 애플와치를 끼며, 다음 랩탑으로 맥북에어를 골랐다. 두 아이가 각자 숙제할 때 쓰는 아이패드는 화룡점정. 내 이놈의 이중성을 어찌할꼬. 아몰라. 우리는 그냥 오랜 시간동안 애플에 가스라이팅 당한거다. 애플을 가까이해야 힙한것이라고.
오늘 몇년간 보유중이던 애플의 주식을 살포시 모두 처분했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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