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딸에게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by 예나빠


요즘 딸아이를 키우며 갖게 된 작은 걱정이 하나 있다. 딸이 도통 밤에 일찍 자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시, 12시야 되어야 잠에 들고 늦으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주위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 저녁 8시, 늦어도 9시면 아이들은 잠에 든다고 하는데, 왜 유독 우리 아이만 왜 이리 잠이 없는 것일까. 일찍 불을 끄고 재워보려 노력도 해 보았지만 방이 어두우면 울고 불고 난리다. 덕분에 부모의 육아 퇴근 시간은 계속 늦춰진다. 아내는 결국 야행성인 아빠 유전자가 어디 가겠냐며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정말 원죄는 아빠에게 있는 것일까. 죄책감이 몰려온다.




잠을 자지 않는 대신 우리 딸은 밤에도 세상의 사물과 원기 왕성하게 소통을 한다. 지치지도 않는다. 낮에 만났던 인형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블록 장난감들을 다시 불러내 갖이 놀자고 한다. 심지어 오밤중에 놀이터 미끄럼틀, 목마, 시소와 약속 있다고 나가야 한다고 조를 때도 있다. 이렇게 딸의 에너지는 밤이면 충만해지고 이를 부작용 없이 다스려주기 위해 할수없이 아내는 책을 많이 읽어주고 있다. 책을 바꿔가며 몇 시간 동안 읽고 읽고 읽어 주다 보면 그제야 딸은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아이의 눈높이로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태어난 지 2년도 안된 아이에게 세상은 무척이나 넓고도 넓으니까 말이다. 눈만 뜨면 새롭고 재미있는 것이 다가오는데 그것들을 누리기에는 하루 24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잠이 들면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온갖 재미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는데, 가능한 눈을 부릅뜨고 이 행복을 사수하고 싶겠지. 날마다 오감을 통해 느끼는 새로운 자극이 딸을 잠 못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금요일 밤이면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붙잡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다. 밤문화에 대한 욕망의물림이라고 할까.



밤을 잊은 딸을 보며 체념한듯 그림 한장을 떠올린다. 광고나 영화에 이미지가 차용되어 눈에 많이 익숙한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빛의 제국>이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그림이다. 숲 속에 집이 한 채, 어두움을 밝혀주는 집 앞 가로등과 2층 방에 켜진 불, 그리고 호수에 비추이는 물그림자. 풍경은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은 하늘이다. 나무와 집의 실루엣만 구분할 정도로 어두운 밤의 풍경인 줄 알았는데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은 영락없이 한낮의 그것이니까.


<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 1954년 캔버스에 유채, 146x144cm (2014년 촬영, 마그리트 미술관)


사실 이 그림을 그린 마그리트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늘에서 무수한 신사들이 비처럼 떨어진다던지, 하늘에 커다란 바위가 떠 있다던지, 구두 밑에 발이 붙어있거나, 커다란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거나 하는 비상식을 상식적으로 그려온 화가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보면 한눈에 이해할수 없어 알쏭달쏭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왠지 마그리트의 그림만큼은 터무니없이 이질적이지는 않다. 뜬금없는 장소에 뜬금없는 사물이 놓여 현실을 뛰어넘긴 하지만 사물 자체는 왜곡이 없어 친숙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그리 난해하지 않다. 현실에 있을만한 대상을 비현실에 살짝 배치하여 관찰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뿐. 피카소처럼 대상을 파편화하지도, 달리처럼 정신분열적이지도 않아서 좋다. 지적이면서도 재기 발랄하며 유머가 넘치던 그의 성격이 그림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 점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그리트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이 그림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마그리트 미술관에서 보았다. 마그리트의 대표작답게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 앞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생경한 모습이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시간을 한 공간에 묶어둔 마그리트의 기발함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미술관 곳곳에는 그가 창조한 상상의 세계가 걸려있었다. 이에 흠뻑 취해 미술관을 나서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난 뒤의 신비함에 젖게 된다. 사색과 사유가 많았던 마그리트는 어쩌면 철학자였던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관습과 통념을 뒤엎는 자신만의 생각을 그림에 남겨온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밤을 잊은 딸이 그렇게까지 걱정스럽지는 않다. 부모가 조금 고달프지만 말이다. 지금은 세상을 느껴가고 알아가고 배워가는 단계니까 이해하려 노력하기로 했다. 오히려 딸아이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이 흐뭇하기까지 하다. 심지어, '영재들은 도전정신이 강해 줄기차게 자기 능력 이상의 것에 도전하고 에너지가 충만하여 잠도 없다'는 한 육아서의 글귀를 읽고 '혹시 우리 딸이 영재가 아닐까?'는 즐거운 망상을 하기도 한다. 밤에 잠을 이루지 않아 발육에 문제가 있을 것보다, 딸아이가 호기심을 잃고 그저 세상에 순응하는 아이로 남는 것이 더 걱정스러울 뿐이다.


딸은 지금 한참 두뇌발달이 이뤄지고 뉴런에 연결된 시냅스의 가지를 무수하게 뻗어 내는 시기다. 세상이 주는 다양한 자극을 건강하게 만끽하기길, 그래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도 퇴화하지 않은 왕성한 시냅스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아이가 되길 바래본다. 르네 마그리트처럼. 그것이 밤이지만 낮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에게 갖는 아빠의 작은 바람이다.




- 예나빠




마그리트 미술관 ((Musee Magritte Museum), 벨기에 브뤼쉘, 2014 예나빠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