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밀땅

<북유럽의 여름 저녁>, 스벤 리카르트 베르그

by 예나빠


아이와 제2 양육자는 묘한 관계다. 필요는 하나 충분하지는 않은 존재.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않았으니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충분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돌봐주는 역할을 해왔기에 전혀 필요없는 존재는 아니다. 와병 중이거나 이혼 등의 이유로 역할이 바뀌는 경우는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엄마가 주 양육자, 아빠가 제2 양육자가 된다. 결국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해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결정되는 것이다. 아이가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 얼굴을 가장 많이 보여준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신을 가장 잘 지켜줄 사람을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아빠는 왠지 애매하다. 아이를 향한 마음은 주 양육자 못지않은데 아이와의 애착관계는 그에 비할 바 못하니 답답하다. 아무리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그치지 않던 울음을 엄마 품에서는 단번에 그친 다던지, 셋이 함께 있다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미친 듯이 엄마를 찾는 다는지, 아빠 품이 아닌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볼 때마다 아빠는 양육의 무대에서 영원히 조연일 수밖에 없어 못내 서운하고 씁쓸하다. 누굴 탓하리오. 아이는 정직해서 자신에게 쏟은 시간에 비례해 반응할 뿐이다.



나도 딸아이와 이런 관계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아이가 자고 있는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오면, 주중에 딸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퇴근 후 한두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니 딸에게 아빠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아빠 또 놀러 와’라던 박카스 광고의 한 장면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 반복하는 사람을 전적으로 믿기엔 위험부담이 있었던 것이다. 어라, 그런데 이 사람, 가끔씩 일찍 집에 오거나 집에 하루 종일 있을 때는 자신과 잘 놀아준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한번 믿어 볼까? 그런데 정말 믿을 만할까? 딸은 아빠를 그렇게 생각했다.


딸아이의 의심 어린 시선, 과연 아빠라는 사람을 믿어도 될까?


가끔씩 아빠가 딸을 안아보려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뻗어보아도 딸은 바로 달려와 안기지 않았다. 아빠에게 가기 전 잠시 고민했다. 안겨도 될지 말지. 그리고 인심 쓰듯 천천히 다가와 안아주곤 했다. 잠이 모자라거나 배가 고플 때, 기분이 울적하거나 짜증 날 때는 아빠의 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빠는 이런 딸의 모습에 희비가 교차한다. 그리고는 가끔씩 생각한다.


이 애가 나와 밀땅하나?


딸이 아빠에게 마음을 줬다 뺏었다 하는 것이, 마치 남녀가 감정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밀한 심리전을 펼치는 것 같았던 것이다. 두 살배기 딸이 아빠를 상대로 진심으로 밀고 당기기를 하겠냐만, 제2 양육자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그 마음과 유사할 것 같다.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자신을 다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랄까.


<북유럽의 여름 저녁>, 스벤 리카르트 베르그, 1899-1900, 캔버스에 오일, 170 × 223.5 cm, 예테보리 미술관 (스웨덴)


요즘 자주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한 장 있다. 저녁 빛을 받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그림. 스벤 리카르트 베르그의 <북유럽의 여름 저녁>이다.


북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이 정면을, 이를 바라보는 두 남녀가 좌우를 채우고 있어 구도가 안정적인 그림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저녁노을이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것만도 같은데, 이 남녀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다. 남자는 팔짱을 끼고 있고, 여자는 가슴을 내밀고 뒷짐을 지고 서 있다. 서로가 편한 사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일까? 데이트 중에 잠시 풍경을 감상하는 중인지, 아니면 심한 말다툼 뒤의 소강상태인지, 둘 사이에 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까지 한다. 여자 뒤에는 넓고 부드러운 잎새를 갖는 활엽수가, 남자 뒤에는 가늘고 긴 잎새를 갖는 침엽수가 세워진 것이 왠지 둘의 다른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남녀는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레 시선을 한 곳에 두고 있다. 강이 보이는 스웨덴의 어느 저택 발코니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이 '밀고 당기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보다 못한 저녁 햇살이 거들고 나선다. 강물을 스치고 다가와 다정하게 이 남녀의 허리춤을 감싸 안고는 속삭인다. 이제 그만 서로를 봐줄 때가 되지 않았냐면서. 다음 장면엔 두 사람은 얼굴을 돌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한 달간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다. 이제 딸은 아빠를 조금씩 '엄마 다음으로 충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밀땅'같은 고급 기술을 펼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빠가 없으면 찾기도 하고 가끔은 아빠 품에 꼭 안겨 새근새근 잠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아빠는 딸에게 조금씩 '충분한 존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 딸과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길 마음으로 바란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던 두 남녀가 결국 시선을 마주하게 되듯 말이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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