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생일>, 플리니오 노멜리니
요즘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는 단연 육아다. 다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들이기에 육아는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다. 서로 조금씩 다른 연령대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의견을 구하거나 조언을 하기도 해서 꽤 유익하기까지 하다.
오늘도 우연히 5개월 아이의 아빠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19개월 아이를 둔 아빠인 나는 나름 육아 선배랍시고 되지도 않는 짧은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가 좋을 때입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100일 잔치로 넘어가게 되자 또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었다. 100일 잔치는 원래 할 생각이 없었다는 둥, 그래도 첫 손주라 부모님들에게 추억을 드려야 하지 않겠냐는 둥,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잔치 물품을 저렴하게 대여해서 손쉽게 할 수 있었다는 둥 그렇게 짧고 긴 수다를 떨다가 문득 우리 아이의 옛 모습을 기억하게 되었다.
아이와 같은 시간의 궤적을 걷다 보면 아이가 쑥쑥 자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다 가끔씩 아이의 옛 모습을 들춰볼 때마다 훌쩍 자라 있는 모습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했던 자신의 감정을 복기하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가능한 아이와의 기념일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길 원하는가 보다. 50일, 100일, 그리고 첫 돌까지의 과정이 담긴 성장 앨범을 만든다던지, 돌잔치를 크고 성대하게 하는 것이 다 그런 이유때문이다.
아내가 아이의 100일이나 돌잔치를 준비한다고 부산을 떨 때 솔직히 마뜩지 않기는 했다. 어째 상술에 휘둘리는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100일 또는 1년을 세상에서 보낸 것을 어떻게든 크게 기념하고 축하해주고 싶은것이 모든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여기 아이의 기념일을 축하해주는 또 한 명의 엄마가 있다. 그런데 벌써 이 애가 네번째다. 첫째가 아들, 그리고 나머지 셋이 딸이다. 막내딸의 첫 돌이라니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엄마는 생일을 맞은 이 아이를 안고 인자하게 웃고 있다. 그리곤 부드럽게 눈으로 말을 건다.
축하해. 우리 딸.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
둘째 언니는 신기한 듯 엄마 옆에서 막내 동생을 올려다보고 있고, 큰 언니는 꽃다발을 들고 동생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 큰 오빠는 이런 엄마와 막내 동생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창가에서 다가온 봄 햇살이 이 사랑스러운 가족을 따듯하게 축복하고 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화가, 플리니오 노멜리니(Plinio Nomellini)가 그린 <첫 생일>이라는 작품이다. 신인상주의 화가답게 화폭에서 빛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독특하다. 빛이 다양한 색 입자로 분해되어 공기 중에 흩날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그림이 주는 분위기는 한층 부드럽고 신비감마저 든다. 플리니오는 젊은 시절에 노동자의 파업이나 정치적인 소재로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말년에는 이렇듯 서정적인 풍경화나 온화한 가족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세월이 그의 마음을 따듯하게 품어준 것이다.
그림 속 이 가족이 플리니오의 가족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을 화폭에 담던 그의 마음은 알 것 같다. 아이와 함께 한 첫 일 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큰 선물이고 경이로움일 테니까. 이렇게,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그래도, 그때가 가장 좋은 때’를 기억할 수 있어서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