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머레이>, 토마스 로렌스
몇 년 전 런던을 여행하다가 켄우드 하우스(Kenwood House)라는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미술관이라기보다 영국의 옛 귀족들이 살던 고풍스러운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영화 <노팅힐>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시대극을 촬영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이 곳에는 페르메이르의 <기타 치는 소녀>, 렘브란트의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과 같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부터 기타 이름모를 영국 작가들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서 본 인상적인 그림 한 점이 있다. 영국의 초상화 작가였던 토마스 로렌스가 그린 <미스 머레이>라는 작품이다. 로렌스가 영국의 왕립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재직하며 초상화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스코틀랜드의 정치가였던 조지 머레이(George Murray)의 의뢰를 받아 그렸는데, 이 그림의 소녀는 조지 머레이 경의 딸이었던 루이스 조지아나 머레이(Louise Georgina Murray)이다.
7-8살 정도 되는 작고 귀여운 소녀가 춤을 추고 있다. 그녀는 검은 모자를 쓰고 빨간 허리띠와 레이스가 돋보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치마 앞자락을 들어 올린 모습이 여느 초상화들과 달리 생동감이 느껴진다.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춤사위를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오디션장에서 청중을 향해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것 같다. 받쳐 든 치맛자락에 놓인 형형색색 꽃잎들이 그림의 장식미를 더하고, 갈색의 곱슬머리와 아직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살이 소녀를 더욱더 귀엽게 느껴지게 한다.
조지 머레이 경은 자신의 소중한 딸의 현재 모습을 오래오래 붙들어 놓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딸이 보여주는 오늘의 아름다움은 언젠가 사라져 버릴테니까. 로렌스는 이런 아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을까? 작은 춤과 하얀 드레스에 담긴 소녀의 순수함을 그림에 극적으로 담아냈으니까.
'아, 이런 딸 하나 갖고 싶다.'
그때까지 아직 아이가 없었던 내가 이 그림을 올려다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2년 뒤 그 소원은 이뤄지게 되었다. 딸아이는 아직 그림 속 소녀만큼 자라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못지않은 귀여움과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요즘은 부쩍 말이 늘은 딸과 조금씩 교감을 누리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딸아이의 어휘 구사에 아빠와 엄마는 깜짝깜짝 놀란다. 특히 아이 특유의 혀짧은 소리가 귀여움을 물씬 느끼게 한다.
물론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원래 딸들이 그런 건지, 우리 아이가 특히 예민한 건지, 무언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고, 짜증내고, 떼쓰기를 무한 반복하여 부모 혼을 쏙 빼놓는다. 육아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절감중이다. 그런데, 속 좁은 아빠는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지 못하고 이런 상황에 닥치면 쉬이 삐치곤 한다. "흥, 싫음 말아라"면서.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세 살배기 딸레미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자신을 모습을 보곤 한다. 아, 머나면 훈육의 길.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딸레미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마음이 허전해진다. 딸에게 시달리던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한데, 이상하다. 왜, 은근히 딸이 어서 일어 나주길, 그래서 아빠를 다시 귀찮게 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일까. 육아를 하다가 감정의 기복을 반복하다 보니, 나쁜 여자같은 딸의 매력에 그만 빠져버렸나 보다. 이런 마약 같은 딸레미 보게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때론 아이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해져도, 또 아이 때문에 감정적 기쁨에 충만케 되는 것말이다. 오늘도 난 딸의 웃음과 울음소리를 들으며 치명적 육아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마도 조지 머레이 경이 딸 루이스를 화폭에 담은 이유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