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아이에게 수유 중인 엄마>, 빈센트 반 고흐

by 예나빠


누군가 내게 '다녀온 미술관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 어디냐?' 고 물으신다면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후보군을 다섯으로 추려준다면 그중 하나로 반드시 넣고 싶은 미술관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 오텔로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이다. 워낙 조용한 시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고, 국립 공원 안에 있는 미술관까지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듯 걸어가는 여정이 특별해 더욱 좋았다.


유명 미술관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위치해 늘 관광객로 붐비곤 한다. 덕분에 차분히 그림을 감상하기에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림을 보는 건지 사람을 보는 건지. 그런 의미에서 크뢸러 뮐러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 곳을 찾아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이 미술관이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숨 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곳은 <감자 먹는 사람들>, <핑크빛 복숭아나무>, <조셉 룰랭의 초상> 등 반 고흐의 300점 가까이 되는 유화와 드로잉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만큼이나 말이다. 특히 <밤의 카페테라스> 앞에서 느꼈던 그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이른 아침을 깨우며 불편한 교통편을 갈아타고 온 그 모든 수고로움을 일순간 보상해주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크뢸러 뮐러에는 <밤의 카페테라스> 만큼이나 아직도 내 가슴에 남은 고흐의 그림이 있다. 그것은 갤러리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두 장의 스케치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자신의 아들로 보이는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 여인은 <시앵 (Sien)>이라 불리던 매춘부였다. 1882년 1월, 시앵에겐 5살 된 첫째 딸 <마리아>가 있었고 또한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석 달 째였다. 그녀는 아이 아빠에게 버림받았고, 갈 곳은 없었으며, 매춘으로 겨우겨우 삶을 연명해야 했다. 그때 고흐를 만났다. 이 가난했던 화가에게 모델일을 제안받고 그 대가로 딸과 자신이 먹을 음식과 잘 곳을 제공받게된 것이다. 그리고 그해 7월 둘째 아들 <빌럼>을 출산한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시앵의 건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성병, 출산 후유증 등으로 항상 어딘가가 아팠다. 고흐는 이런 그녀가 늘 안쓰러웠다. 그래서 늘 곁에서 그녀를 간호했다. 연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줄 것이 그리 많지 않음에서 오는 슬픔이기도 했다. 일종의 계약에서 시작한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족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의 이런 마음은 그녀를 모델로 그렸던 많은 그림들에 그대로 담겼다.



<아이에게 수유 중인 엄마> (왼쪽), <아이와 함께 앉은 엄마>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 1882, 종이에 연필,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예나빠 촬영, 2014).



그림 속 시앵은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완연하다. 여전히 건강은 좋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도 여전히 모정은 살아있다.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세상의 어떤 엄마와도 다르지 않기에 말이다. 자신의 아들에게만은 이 고단한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었다. 젖을 물리며 아이에게 엄마는 눈으로 이야기한다. "미안하구나, 빌럼. 이런 엄마라서." 고흐는 그 순간을 스케치했다. 그가 가졌던 연민, 슬픔, 미안한 마음을 함께 담아서. 모델일을 마치고 이 불완전한 가정을 연명하기 위해 또 거리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모며 고흐는 마음이 저며왔다.




2016년 초 아내가 첫째 딸을 낳았다. 밤마다 모유수유를 하던 아내를 보면서 1년 전 크뢸러 뮐러에서 본 이 스케치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떤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다. 아니, 떠올렸다. 아빠는 절대로 온전히 느껴볼 수 없는 마음. 그것은 모정이었다. 10개월을 뱃속에 품었다가 큰 고통과 함께 출산하고, 이후에도 자신의 피를 모유로 바꿔 아이에게 나눠주는 엄마. 딸아이는 이런 엄마에게 이미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 딸이 자라 육아가 조금씩 힘들어지고 고민이 많이 지는 요즘.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가졌던 마음, 시앵과 아내가 가졌던 그 마음을 나는 오늘 조금이나마 알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 예나빠



크뢸러 뮐러 미술관 (Kröller-Müller Museum), 네델란드 오텔로, 2014 예나빠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