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힘들게 하여도..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

by 예나빠


퇴근 후 아이들을 볼 생각에 부푼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잘 놀고 있었다. 첫째는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고, 둘째는 이제 막 앉기 시작하면서 손에 잡히는 장난감을 입으로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첫째는 심술이 많이 늘었다. 어느새 둘째 앞에 나타나 장난감을 빼앗았다. 둘째는 힘센 누나의 왈패 짓에 그저 당하고만 있었다. 뭐, 여기까지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아내의 표정이 오늘따라 심상치 않았다.



"아, 창피해 죽겠어!"


아내는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편이 퇴근하기만 기다렸다는 듯.


"사실은 오늘 A 엄마, B 엄마, C 엄마하고, D 엄마 집에 놀러 갔거든.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려 노는데, 유독 우리 아이만 거기서 완전 악동짓을 해. 그 집 아이 장난감이고 뭐고 다 가방에 챙겨서 자기 거라고 우기고, 누가 조금만 건드리면 미친 듯이 악쓰고 고함지르고. 아, 어찌나 다른 엄마들한테 미안하던지... 이러다가 우리 애 왕따 되겠어!"


첫째 딸이 이제 만 세 살이 되어간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떼쓰고 징징거리는 빈도수가 확연히 높아지는 것을 보며 워낙 예민한 아이이고 어쩔 수 없는 기질 탓이라 이해해왔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가능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 했고. 하지만, 애 엄마도 아빠도 아이의 끊임없는 짜증과 떼씀, 반항에 가끔씩은 꾹꾹 눌러온 화가 폭발하곤 한다. 아이에게 큰 소리까지 지르게 된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말 안 듣는 악동이고, 부모는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지독한 자책과 자기혐오에 휩싸일 뿐이었다.



요즘 육아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답을 찾아보고자 말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어찌나 애들을 잘 이해하고 번듯하게 잘 키우고 육아를 잘하셨던지, 다들 관세음보살들이신가. 어찌 울고 보채는 아이들 앞에서 평정심을 그토록 잘 유지하셨단 말인가. 현실 육아에 괴리감만 느껴지는 가이드들이라 더 이상 읽혀지지가 않았다.


육아서는 말한다. 아이에게 100번 잘하고, 한번 '욱'하게 되면 앞에서 했던 그 모든 선행(?)이 도루묵이 된다고. 사실 부모가 '욱'하게 되는 것도 가능한 아이에게 잘해주려 많은 노력을 쏟다 보니 일어나는 게 아닐까. 아이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에, 자신이 쓸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육체적,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니 쉬이 지치게 되버리는 것이다. 탈진한 부모와 불만족스러운 아이가 충돌하니 결국 사달이 일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법 육아를 심각히 고려한다. 이럴 바에야 아이와 육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아이에게 100번 잘해줄 에너지를 아껴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부모가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여 아이에게 화를 낼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다. 꽤 무미건조한 육아가 될 것이다. 알고 있다. 참으로 아빠스럽고 무책임한 방법이라는 것을.


어차피 애가 크면 아빠와 거리가 생기고 멀어지게 되는데, 이제 두 살밖에 안된 애와 거리를 스스로 두려고 하다니, 참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아이와 인격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중요한 시기인데 말이다.


아,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결국 우리 부부의 사랑이 부족한 것일까? 딸아이의 주머니에 아직도 채워져야 할 부모의 사랑의 빈자리가 큰 것일까? 육아서는 말한다. 이럴 때마다 부모가 해야 할 말은,


'엄마 아빠는 너를 무척 사랑하지만, 이 것은 해줄 수가 없구나.'


라고. 하지만, 이렇게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여 훈육하고 가르치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부부에게 요원해 보인다. '아이의 삐뚤어짐은 전적으로 부모의 그것도 엄마의 책임이 크다'라는 생각에 아내의 근심은 오늘도 깊어간다. 게다가 육아와 가사까지 겹친 피곤해 보이는 아내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미안하고 안쓰럽다. 요즘 퇴근 후 가능한 많이 도와주려 노력하고 있는데 더 신경 써야겠다.


오늘따라 런던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에서 본 이 여인의 처연한 얼굴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와 자꾸 겹쳐 보인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 96 × 130 cm, 캔버스에 유채, 코톨드 갤러리 (런던)



- 예나빠



코톨드 갤러리 (Courtauld Gallery), 런던, 영국. 예나빠 (c),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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