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파티>, 존 싱어 서전트
조촐해 보이는 파티이다. 샹들리에와 식탁 위의 램프가 유일한 조명인 것을 보면 시간대는 늦은 저녁 아니면 밤인 것 같다. 가족들이 배경에 서있는 아이 아빠가 퇴근하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촛불에 의해 환히 비친 소년의 상기된 얼굴을 보라. 이 아이는 자신의 6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생일 케이크에 정신이 쏙 빠져있다. 이미 촛불의 불을 끈 것일까. 몸도 마음씨도 넉넉해 보이는 아이 엄마가 벌써 케이크를 정성스레 자르고 있다. 아이와 아빠가 쉬이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인테리어, 엄마의 드레스, 일본식 샹들리에, 식탁보, 그리고 식탁 위의 유리 식기와 찻잔들이 이 그림의 화려함을 잘 살려준다.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반면에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다소 절제되어 있다. 엄마도 아이도 얼굴에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아이 아빠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왠지 모를 따듯함이 느껴진다. 다소 무덤덤해 보이는 부모지만, 자신의 첫째 아들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 가득 채워진 붉은빛이 그 온기를 더해준다.
이 그림은 미국의 3대 화가 중 하나인 알려진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가 1885년에 그린 <생일 파티>이라는 작품이다. 사전트는 미국인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생을 유럽에서 보냈고, 특히 파리와 런던에서 보내면서 화가로서 가장 빛나는 경력을 쌓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상류층의 환경에서 자라면서 지적이고, 섬세하며 낭만적인 청년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가 파리에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그의 성격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시작했다.
특히, 초상화를 그리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이면서 유럽 귀족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애그뉴 부인>,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여사>, <샬롯 루이스 부인>, <워렌 부인>, <헌터 부인> 등 무수한 귀부인 또는 그들의 영애들이 그의 붓을 거쳐갔고 <루스벨트 대통령>, <헨리 제임스 경>, <록펠러> 등 영미권 유명 정치가, 귀족, 대부호, 소설가들도 사전트의 주 고객이 되었다. 그 유명세가 미국에까지 알려지면서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기 위해 미국의 상류층 인사들이 자비로 영국에 방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들은 현재 영국과 미국의 미술관에 많이 남아있다.
사전트는 또한 초상화뿐 아니라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만난 풍경을 수채화로 남기기도 했고, 우정을 쌓고 지내던 화가, 조각가, 음악가, 배우 등 예술가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고관대작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그의 주요 수입을 책임져 주는 그의 '업'이었다면, 이렇듯 주변의 풍경과 일상을 자유로이 그리는 것은 지친 그의 몸과 마음에 주는 일종의 '안식'이 아니었을까. 그의 대표작인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라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이 그 과정에 탄생하게 된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이 그림은 아직도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늘의 그림 <생일파티>에 담긴 인물들도 사전트의 벗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화가였던 앨버트 베스나드(Albert Besnard)와 그의 아내 샬롯(Charlotte Dubray Besnard), 그리고 이 부부의 사랑스러운 아들 로버트(Robert Besnard)가 그 주인공이다. 아마도 사전트는 이 가족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나 보다. 뒤늦게 시작한 로버트의 생일 축하 파티가 사전트의 눈에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 장면에서 무언가를 보았던 사전트는 그렇게 스케치북을 열어 급하게 스케치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림 속 로버트의 상기된 표정에서 나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얼마 전 딸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이 풍진 세상에 그것도 타국에서 맞는 기념일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작게나마 축하 파티를 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족끼리 함께 식사 정도의 조촐함을 생각했지만, 점차 스케일이 커지더니 딸아이의 친구들과 부모들을 모두 초대하는 제법 성대한 파티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다른 엄마들의 아내에게 향한 선한(?) 부추김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에게는 일 년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주인공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요란스러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내의 파티 계획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다만 딸아이가 행복해할 얼굴을 생각했다. 그래, 이날만큼은 네가 주인공이어야지. 아내는 며칠 전부터 부산스럽게 준비를 했다. 클럽하우스를 대여하고, 음식 목록을 정리하고, 장을 보고, 아이의 파티복을 골랐다. 그 과정에 내가 거든 건 당일날 아침에 마트에서 풍선 몇 개와 케이크를 공수해 준 것뿐이다. 아, 생일잔치 포스터도 그려주긴 했다.
평일 점심시간에 했던 파티라 나는 그 자리에 있어주지는 못했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들에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는 얼굴의 딸아이가 있었다. 갖고 싶어 했던 킥보드를 선물로 받고 세상 다 가진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친구의 생일잔치에서 선물 상자 가득 안아 든 친구를 부러워하던 딸아이는 이 날 만큼은 아무도 부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파티 어땠어?"
저녁에 퇴근한 저는 다소 궁금한 마음에 파티 분위기에 대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파티 준비에 고단했던 아내는 허리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애가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니까. 정말 행복해했었어. 아, 정말 내가 이거 안 하려다가 그 웃는 얼굴 한번 보려고 그 모든 고생을 한 거잖아"
아이의 행복은 부모에게 그렇게 전이되나 보다. 그 모든 수고로움이 한 번에 잊힐 만큼. 사전트가 스케치북에 담은 것도 친구 부부의 눈에 비친 그 행복감 아니었을까?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