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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Oct 14. 2015

A2. 고흐가 불러낸 아를의 꽃잎

반 고흐 미술관 - 그의 삶을 따라가는 한 시간의 여정


개화 중인 작은 배나무.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에 휘몰아치는 뜨거운 감정에 사로 잡혔다. 그 느낌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것은 고흐가 그토록 추구하던 새로운 빛과 색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새로운 색감을 그는 이 그림에 고스란히 쏟아부었고, 그가 그려 내린 풍성한 색채가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온전히 그림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보랏빛 땅과 푸른 나뭇가지에서, 그리고 붓으로 찍어 그린 꽃잎의 겹겹에서 느껴지는 것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눈부신 빛을 만났던 고흐의 환희였다.


<배나무>, 1888년, 빈 센트 반 고흐, 캔버스에 유채, 73 x 46 cm, 반 고흐 미술관





"나, 이 그림 본 적 있어.."


수많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마디였다. 주위에 내 말을 알아듣는 이가 없다는 것이 이럴 때는 참 편리했다. 이 그림 앞에서 느꼈던 기시감은 파리 오르쉐 미술관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파리 출장길에 짬을 내어 들렸던 오르쉐 미술관. 수많은 인상파 작품들을 넋을 놓고 관람하던 내게, 갑자기 나타난 것은 바로 이 ‘고흐의 방’이었다. 초등학교 미술책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그림이었기에, 이 예상치 않은 만남은 내게 작은 기쁨이었고 마치 ‘빈센트 반 고흐’를 직접 만난 것과 같은 설렘이었다.


그 마음이 암스테르담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같은 공간인 ‘고흐의 방’에서. 빛의 흐름을 좇아 아를에 도착했을 때 고흐가 만난 것은 새로운 색채였고, 이 곳은 그가 파리에서 익힌 색을 다루는 마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그래서였을까, 이 그림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설렘이었다. 고흐는 매일매일 들뜬 마음으로 아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잠이 들었다. 이 색채가 지배하는 방에서. 그리고, 반가운 벗이 자신을 찾아와 주길 쏜꼽아 기다렸다.


<고흐의 침실>,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오일, 72 x 90.5 cm, 반 고흐 미술관.




아를에서 맞이하는 첫 봄, 프랑스 남부 시골마을의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은 고흐에게 생기를 찾아주고 있었다. 이 즈음 고흐는 과수원 나무들에 핀 자두, 복숭아, 배 꽃들에 매료되어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과 분홍색 복숭아나무 꽃이 주는 어울림이 고흐의 붓질을 열정으로 이끌었다.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어와 야외 작업을 어렵게 했지만, 그럴수록 땅에 박아둔 이젤의 말뚝을 더 강하게 고정해가며 그리기를 계속했다. 그렇게 아를의 과일나무들이  하나둘씩 캔버스 안에서 꽃을 피웠다.


<복숭아 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0.5 x 59.9 cm, 반 고흐 미술관


<하얀 과수원>,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60 x 81 cm, 반 고흐 미술관


과일나무 연작들은 미술관 한편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고, 덕분에 1888년 완연했던 아를의 봄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흐가 파란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들을 감아올리고, 흰색, 분홍색 물감을 찍어 피워낸 것은 평화였다. 하얀 꽃잎이 뒤덮은 과수원을 채색하고, 닦아내듯 빠르게 하늘과 구름을 덧칠해내 불러낸 것은 시원한 봄바람이었으며. 바람결에 흩날리던 작고 하얀 꽃잎들은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였고,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 예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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