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아빠의 심심함

by 예나빠

요즘 들어 딸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 심심해에.."


견딜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은 자못 심각하다. 이는 아빠에게 자신의 이 무료한 상태를 빨리 해결해 달라는 신호다. 그런데 아빠로부터 별 반응이 없으면, 본격적으로 목청을 높여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하다고오~~~~"


이미 아이와 한바탕 놀아주기로 체력을 소진한 나는 급기야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해괴한 논리로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예나야. 심심한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그래. 이 순간을 감사히 여기고 지금 쉴 수 있을 때 푹 쉬렴, 응? 아빠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예나가 부러운걸... 응? 응?"


"싫어 싫어 싫다고오오오~~"


"에구, 그래그래.. 알았어..."


<지루한 수업>, 윌리엄 헨리 헌트, 1839, 8.5" x 9.75", 개인 소장


아이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일어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딸아이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심심해'라는 말. 낯설다. 이 말이 왜 이리 어색하게 느껴질까. 그리고 보면 성인이 된 후 '심심해'라는 말을 누구에게 듣거나 해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시도 무료하고 심심할 틈 없이 살아와서 그랬을까? 그동안의 내 인생이 그리 익사이팅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낯선지 모르겠다.


'심심함'이 견딜 수 없는 아이였던 우리는 한두 살 나이를 먹으며 하나둘씩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들의 시간은 점차 책임져야 하는 일들로 채워졌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심심한 순간들은 TV와 디지털기기들이 대신해주었다. 그렇게 이 '심심해'라는 말은 우리의 단어장에서 사라졌고, 아이들만의 언어로만 남았다. 무료함을 없애주던 그것들에 점차 의지하게 되면서 내 머리는 점차 굳어져갔고.


'심심함'을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모르는 아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 폭발해서 머리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니까. 머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데 아무런 입력이 없으니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 그런데 오늘 딸아이는 유튜브를 통해 욕망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21세기 최대의 발명이라는 이 플랫폼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계륵같기만 하다. 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는 대신 심기일전에서 다시 아이와 방바닥을 구르기로 했다. 숨바꼭질과 공룡, 늑대 흉내를 내며 아이의 흥을 돋우는 것은 덤이다. 저질체력때문에 금새 가쁜 숨을 몰면서도 한편으로 기대한다. 아이의 머릿속 시냅스가 꿈틀꿈틀 대며 충분히 발달하기를. 끝까지 다짐한다. 딸내미를 절대 팝콘 헤드로 만들 수 없다고.



아이들과 아내가 모두 잠든 깊은 밤. 적막이 찾아오면 침대에 누워 거룩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오늘도 심심할 새 없는 보람찬 하루였어,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열어 유튜브 아이콘을 꾹 누른다. ‘와썹맨', '워크맨', 그리고 '희극인' 영상을 보며 히죽히죽거리며 잠에 빠져든다. 에이, 불쌍한 인생 같으니.



- 예나빠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의 지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