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이름에 대한 아주 짧은 생각.
올해 초 한달 일정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2주는 휴가를 쓰고, 2주정도를 원격 근무로 인텔 코리아 사무실에서 했다. 인텔 코리아 사무실에 갔더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직원들이 모두 외국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없으면 입사 시에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뭐, 본사나 해외 인력들과 자주 일을 해야 하니, 외국인들이 부르기 편하고, 호칭에서 직급을 뺄 수 있어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으니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끼리 서로 제임스, 알렉스, 빌리, 타일러 등등으로 부르는 게 어찌 영 어색해 보였다. 정작 미국 본사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가 아닌 이상 영어 Nickname을 쓰는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말이다. 발음이 어려운 한국 이름인 경우에도, 그러려니 하고 외국인들이 부르는 데로 내버려 두곤한다. 매번 발음을 수정해주기도 번거롭고. 한국, 인도, 중국, 일본, 유럽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우리 팀원들도 발음상의 이유로 영어 이름을 쓰는 경우도 없었다.
사실 내 이름도 발음하기 그리 쉬운 건 아닌데, 미국에서 그냥 쓰고 있다.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하는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건 아니고 그저 귀차니즘이라고 할까? (사실 저도 영어학원 다닐때 만들었던 Nickname이 있다. Joe).
컨퍼런스 콜등으로 회의를 할 때 처음 만나는 외국인들이 스펠링을 보고 내 이름을 부를 때 약간은 어색해 하곤 한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자기 추측으로 일단 영어식으로 발음한 뒤, 상대방에게 발음이 맞는지를 물어보고 그 발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날 본 한국계 미국인 배우 '이기홍'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치고 드물게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데, "다른 이를 위해서 내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라나.
"그저 당신 자신으로 살고,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배우도록 만들어요. 당신이 충분히 실력과 재능이 있고, 얼마 동안 지내다 보면 그들이 당신의 이름을 배울 겁니다. Yasiel Puig가 발음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 이름의 발음을 배웠어요. 왜냐면 그의 야구 실력이 출중해서였죠. 저는 지금 제 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이름을 지키는 것을 하나의 동기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미국 회사생활을 좀 하다보니 팀원이나 타부서 친구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이들을 만난다.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곤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이름이 빈번하게 불려진다. 그들중에는 발음하기 힘든 인도, 중국, 유럽친구들도 많다.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이름이 각인된다.
'이름'은 나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얼굴인것 같다. 소유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그래서, 발음하기 쉬운 새 이름을 갖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면셔 자신의 정체성을 잊게 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불리우는 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아닐까?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