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괄식 화법을 구사하게 된다. 누군가 내게 무언가 질문을 할 때 귀에 먼저 꽂히는 것은 '의문사'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의문'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영어 한 단어다. 그것이 Yes/No이던지, 장소, 방법, 시간, 사람이던지 상관없다. 가장 궁금해하는 걸 가장 먼저 대답하고, 그다음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기 시작한다.
영어가 아니더라도 이런 두괄식 화법은 비즈니스 대화의 기본으로 간주된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걸 가장 먼저 들려줘야 하니까. 사실 이런 두괄식 화법의 필요성은 전 직장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인데, 쉬울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쉽지 않던 대화법이었다. 이는 상급자, 특히 임원과의 대화 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킬이다. 시간이 금과 같은 임원들은 '결론'부터 보고받는 것이 생활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김수석, 자네 팀에서 개발한 기술이 경쟁사와 뭐가 다르지?"
회의석상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김수석의 머리엔 오만가지 생각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우리 팀원들과 밤새도록 개발한 이 기술을 알아듣게 설명하려면 우선 현재 문제점부터 설명해야겠지? 그러려면 그 문제점의 배경을 설명해야겠군. 그렇게 배경부터 친절히 설명하려는 배려심으로 김수석은 장광설을 풀기 시작한다. 임원이 궁금해하는 그 대답을 내놓기 위해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착역은 '산'이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라며 그전에 그 임원이 제지하겠지만 말이다.
대학원에서 처음 영어 논문을 읽을 때 생소한 문장 전개 방식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무슨 글이 배경 설명 없이 다짜고짜 자기들이 한 것부터 말하지? 이런 불친절한 글을 봤나. 하지만, 연차가 높아지고 논문의 문장에 익숙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이 두괄식 문장이 가장 친절한 글임을 알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무슨 새로운 것이 있을까를 궁금해할 독자를 가장 먼저 만족시킬 테니까 말이다.
회사에서 영어로 회의를 하거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도 이들은 늘 결론을 먼저 말한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부연설명을 하는 것은 일견 사족인 것이다. 아직까지 일천한 리스닝 스킬 덕에 상대방이 무엇을 묻는지 집중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저도 이들의 대화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영어는 구조적으로 두괄식을 따르기 쉬운 언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어도 두괄식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상대방의 답답함을 일순간에 해소시키고, 당신을 사이다로 보이게 하는 마법, 결론부터 말하는 습관을 들여 당신의 임원을 기쁘게 해보길 바란다.
- 예나빠
ps. 예외는 있다. 아내와 대화할 때 두괄식 화법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공감을 원하는 화법과 '결론이 뭔데?'라는 질문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이는 곧 헬게이트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