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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빠 Nov 05. 2020

발표 울렁증이 그립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해야 비로소 느낄수 있는 느낌.


삼성 시설 많은 직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서별로 돌아가며 각 팀의 업무를 소개하는 일종의 세미나였는데, 미국 출장 중이던 팀장의 부재로 우리 팀의 발표 파트는 그다음 고연차인 내게 돌아왔다. 대강당에는 타 부서에서 온 백 명이 넘는 엔지니어들로 채워졌고, 그들 앞에서 나는 첫 연사로 나섰다. 발표 자료를 대형 화면에 띄우고 팀 내에서 일어나는 몇몇 업무들을 순서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발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놈의 망할 울렁증이 시작된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습해보겠다고 하지 말아야 할 어쭙잖은 멘트까지 날렸다.


"이게 뭐라고 떨리네요..."


최악이었다. 여기저기서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부터는 청중은 내 발표 내용보다 내 목소리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회사생활 지루했는데 오래간만에 저분이 웃음 주시네. 얼마나 더 떠는지 볼까?'라고들 생각하는 듯했다. 허둥지둥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내려온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혔다.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수석연구원씩이나 돼서 아직도 떨기나 하고.


츨처: 무슨 만화, (c)ooo


대학원 시절 선배가 "발표는 짬밥"이라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발표 이력만 따지면 난 이미 엄청난 짬밥을 먹었던 터였다. 대학원 시절 랩 세미나, 논문 발표도 많이 했고, 심지어 학부생이나 교육 대학원생들 앞에서 강의도 했다.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 발표 면접을 했고, 입사 후에도 기술 세미나, 특허 피어 리뷰, 출장 보고, 학회 논문 발표, 프로젝트 디자인 리뷰, 외부 초청 강연 등 작게는 팀원들, 크게는 사장단 앞에서도 발표를 하곤 했다.


이렇듯 무수한 발표 기회도 가졌건만, 이상하게만치 그놈의 울렁증은 없어지지 않고 불쑥불쑥 올라왔다. 거의 매번 발표시마다 긴장했다. 그 긴장감을 조기에 진압하여 청중이 눈치채지 못하면 발표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앞에서와 같은 참사가 일어났다. 이쯤 되면 난 발표 체질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보니, 발표를 잘하는 동료나 상사들이 참 부러웠다. 그들의 좋은 아이 컨택, 신뢰감 있는 목소리, 비문 없는 정갈한 화술,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능력은 내겐 마법처럼 보였다. 이런 발표력을 가진 연구원들은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 셈이었다.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자신이 아는 것을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능력,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장착해야 할 기본적 소양인 이 발표력. 나는 그것이 없었다.


발표의 좋은 예. 출처: https://www.indiatoday.in/


발표, 즉 프레젠테이션은 직장생활의 꽃과 같다. 앉은자리에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자신의 업무, 개발한 내용, 진행 사항을 누군가 앞에서 발표할 순간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니까. 직급이 높아지고 팀을 맡게 되면 이런 기회는 더 많아진다. 그리고 해야 하는 발표의 무게도 달라진다. 자신이 조직의 대표성을 갖기 때문이다. 팀 프로젝트 결과를 임원에게 보고하거나, 새로운 과제를 기획해 리뷰를 받는 발표는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팀 향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실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발표력이다.


2013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154명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과 직장생활’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인 51.3%가 ‘발표력이 연봉과 승진에 큰 관련이 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작 본인에게 준 발표력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균 65.9점.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부족한 화술(52.6%), 무대 긴장감(43%), 정보 활용 부족(28.9%), 파워포인트 능력 부족(28.9%) 등을 꼽았다. 많은 이들이 발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처럼 말이다.


뒤돌아보면 난 그놈의 '발표'라는 것을 어떻게든 해온 것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해내야지 어쩌겠는가. 중요한 발표가 잡히면 발표자료 만드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고, 여러 번 자리에서 연습을 했다. 실제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발표 며칠 전이면 모두가 퇴근한 밤에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 들어가 자료를 띄워놓고 모의 발표를 했다. 당일 아침이면 청심환을 몇 알씩 씹어먹기도 했다. 언제나 따라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때로는 망치기도 했지만, 때로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발표 한번 하는 것에 목숨을 걸듯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표를 한번 망쳤다고 수치심에 며칠 동안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표를 잘하면 남들보다 인정받기도 하겠지만, 발표력은 개인의 능력 중 하나일 뿐이며, 부족한 발표력만큼 누구나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 부족한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다.



미국에 온 뒤로도 몇 번의 발표 기회를 가졌다. 아이러니하게 영어로 발표를 하다 보면 울렁증은 올라오지 않는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부터도 그랬다. 해외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때, 생각을 영어로 바꿔 말하기도 바빠 긴장감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청중이 외국인들인 것도 한몫한다. 그들과 나사이에 존재하는 언어 장벽이, 무대 압박감으로부터 심리적 바리케이드를 쳐준다.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고 내 앞에 놓인 발표자료만 보인다. 물론, 부족한 내 영어만큼이나 미흡한 시선처리로 청중을 집중시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발표를 망치는 일은 없다.


영어로 발표하기 바빠 울렁증 따윈 느낄 겨를이 없었다. (c) 예나빠.


현재 회사에서도 회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발표도 온라인으로 하게 된다. 백 명이 넘는 청중은 얼굴 없이 화상 회의 솔루션의 참가자 리스트로만 존재한다. 프레젠테이션 모드로 PPT를 띄우고, 발표는 미리 작성된 PPT의 스크립트를 적절히 활용한다. 그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공유된 내 데스크톱 화면과 내 목소리. 발표 긴장감을 줄 요소가 없다.

 

코비드 19로 온라인으로 바뀐 학회에 내 논문 발표 영상을 녹화해 보내면서, 어쩌면 앞으로는 발표 울렁증이란 그저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수백 명의 시선에 눌려 머리가 하얘지는 일은 언택트 시대에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때가 그립곤 한다. 청중과 대면하고 눈을 맞춰가며 발표를 하던  순간이 말이다. 그리고 보면  '울렁증' '긴장감' 참으로 인간적인 느낌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때만 비로소 느낄  으니 말이다.



- 예나빠


표지 이미지 출처: https://ahaslides.com/blog/conquering-stage-fright-mission-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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