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아주 깊은 새벽이었다. 적막함을 찢어내는 듯한 첫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허둥지둥 안방으로 달려갔다. 잠에서 깬 아내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사색이 되어 있었고, 곁에서 첫째가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잠결에 뭔가 불쾌하고 불안한 감촉을 느꼈던 아내는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냈고, 침대와 옷에 번진 처음 보는 액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던 것이었다. 곁에서 함께 자고 있던 첫째 아이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반응에 겁을 먹고 떨고 있었다.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어떻게.. 양수가 터진 거야?"
말로만 듣던 일이 일어나자 우리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며칠 전에 받아온 명함을 꺼내 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천만다행스럽게 담당 선생님이 당직이었다. 통화로 아내에게 현재 증상에 대해 한참을 듣던 선생님이 전화를 건네받은 내게 말했다.
"아버님, 아무래도 어머님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그럼, 지체하면 감염의 위험이 있거든요. 바로 출산을 해야 되니까 산모 데리고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예정일이 일주일 남았다고만 생각해서 짐도 미리 싸놓지 못했다. 나는 서둘러 주섬주섬 출산 가방을 쌌고 아내는 도우미 할머니께 집에 와주시길 부탁하는 전화를 했다. 도우미 할머니는 늦은 새벽이었지만 잠을 깨워 바로 우리 집에 달려와 주었다. 고마웠다. 전화를 끊고 그제야 울고 있는 첫째 아이를 안아주었다. "예나야 많이 놀랐어? 미안. 엄마가 동생을 낳으려나 봐. 할머니랑 같이 있을 수 있지?"
할머니께 맡겨진 눈물 가득한 첫째 아이의 얼굴을 뒤로한 채, 걷기도 힘든 아내를 부축하며 집을 나섰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어색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 녀석이 엄마 아빠를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 아내도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래. 나도 이 녀석 빨리 보고 싶어"
병원 스텝의 도움을 받아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무통주사를 척추에 맞고, 손등에 링거를 꽂은 채 분만실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린 나도 분만실 구석에 있던 작은 소파에 몸을 뉘웠다. 둘 다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말은 안 했지만, 서로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뭣 때문에 이 멀리 타국에 와서까지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한국이었으면 벌써 일가친척들이 와 주었을 텐데. 보고 싶어. 엄마. 또다시 엄마가 될 아내는 분만에 대한 두려움에 그녀의 엄마가 무척이나 생각났다.
새벽 5시경, 출산이 시작되었다. 백인 산부인과 선생님은 영어로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끊임없이 산모를 격려하고 간호원들도 "조금만 힘을 내, 거의 다 되었어!"라고 아내의 곁을 지켜주었다. 이들은 얼굴에 계속 웃음을 띄고 있었다. 출산이 누군가의 밝은 응원을 통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덕분에 아내는 불안감을 떨치고 사력을 다해 온몸에 힘을 주었다.
나는 차마 출산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엄두가 안 났다. 머리맡에서 아내의 손을 잡고 신호에 맞춰 함께 힘을 써줄 뿐이었다. 그때였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둘째 아이가 엄마의 가슴팍에 턱 하니 놓였다. 포근했던 엄마 뱃속에서 끌어내져, 생경한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이 조그마한 생명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울어댔다. 마치 죽음을 공포를 느낀 것 마냥. 아내도 나도 잠깐 동안 목이 메었다.
병원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옷가지들을 더 챙기기 위해 가끔씩 병원과 집을 오갔다.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씩씩하게 아빠를 기다려주었다. "예나야, 동생 만나러 갈까?" "응!" 그렇게 첫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그 길은 우리에게 찾아온 둘째를 축복하듯 새로운 계절을 시작하고 있었다. 가로수에 핀 생명은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쌓였던 피곤함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은 반 고흐가 동생을 위해 그려냈던 아몬드 나무의 꽃송이처럼.
"너와 제수씨, 그리고 새로 태어난 조카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아몬드 나무 한 그루란다.
가족을 위해 그리는 그림이라 더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하늘색 바탕에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가지를 그리고 분홍의 꽃잎을 그려 넣었다. 피어나는 새 생명을 축복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네 가족 침실 벽에 걸어 놓으면 좋을 것 같다. 너와 제수씨 그리고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가 이 그림 밑에서 평화스럽게 잠이 든 모습을 상상하면서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단다.
부디 우리 빈센트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나 품에 안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고 고귀한 우리 빈센트.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돈 한 푼 벌지 못하던 고흐는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주던 동생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꽤 많은 그림을 그려왔지만 그간 동생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죄책감, 붓을 든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그러던 동생에게 새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고흐는 마치 자신의 아이를 얻은 것처럼 너무 기뻤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걸려 이 그림을 그렸다. 해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리며 담으려 했던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자신도 한 번도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감정을 붓으로 나마 드러내고 싶었을 게다. 정신병으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가던 와중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 것을 보면. 고흐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버렸던 그해였다. 자신이 그렸던 그림 속의 그 별.
둘째를 낳고 한동안 정신없이 애를 보다가 또다시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첫째가 외롭지 않게 해 주기 위해 둘째를 계획했지만, 정작 둘째 아이가 달래주는 외로움은 아빠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내가 더 중요한 삶을 살았던 나였는데, 혼자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믿어왔던 나였는데, 마음 한편 애써 외면해왔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그런 내가 언제부턴가 누군가의 '남편'이,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더 이상 '나'만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었다. 부모와 친구를 떠나온 이곳에서 그 외로움이 커져갈 때, 또 다시 아빠가 된 것만으로 마음은 위로를 얻었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부성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 마음이 아직도 새털같이 가볍기 짝이 없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고흐가 그림에 담았던 그 마음을.
- 예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