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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Jul 24. 2018

영하 26도가 필요한 오늘

한겨울에 블라디보스톡을 가야 하는 이유 

오늘의 주파수: 읽기만 해도 서늘해지는 영하 기온의 여행                            

  (a.k.a 내가 시원한 거 보고 싶어서 쓴 것)


올해는 벚꽃도 활짝 못 필 만큼 봄도 따뜻하지 않아서 “이래서 여름이 오려나?”했는데 웬걸, 밤바람 마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심지어 서울의 밤기온이 29도, 대구는 31도라는 열대야란다.


‘밤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다 불현듯, 지난 연말에 다녀온 블라디보스톡의 강취위-영하 20도 이하가 최고 기온이었던-두 겹이나 낀 장갑을 벗으면 손이 시려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70년대에 나온 나의 펜탁스 필름카메라(a.k.a 어르신)가 작동을 안 하던 그 추위 말이다.


요 근래 여러 여행 예능에 나오면서 여행책도 많고 블라디보스톡에 대한 여행 정보가 많다. 나 역시 여행서적을 기반으로 갈 곳을 찾아다녔지만 직접 경험한 블라디보스톡은 ‘가까운 유럽’이란 수식어로 끝내기엔 그리 간단한 느낌은 아니었다. 부동항[不凍港]-얼지 않는 항구라 불릴 만큼 바다가 얼지 않는 곳, 가장 추운 시즌에 가서 찍어온 영상과 사진들과 함께 내가 겪은 블라디보스톡을 써보려 한다. 블라디보스톡을 겨울에 가야 하는 이유와 함께 보기만 해도 시원해질 사진, 영상과 함께 올려본다.



언 바다 위로 지프차가 다닐 정도로, 춥다!!

한반도에 강추위가 오면 우리는 ‘시베리아 바람이 온다’는 소릴 한다. 블라디보스톡이 그 시베리아 바로 아래 있는 지역이다. 그러니 대놓고 춥다. 그래서 한겨울엔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운행 횟수도 줄어들 정도다. 부동항이지만 바다는 꽁꽁 얼어있었다. 먼 바다까지 사람이 걸어나가도 문제없고 그 위로 지프차가 다닐 정도다. 다만, 배가 자주 다니는 항구는 얼지 않는다. (항구가 얼지 않는 거지 바다가 얼지는 않는단 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소금물이 얼 정도의 추위! 파도치다가 얼어버린 블라디보스톡의 바다
숙소에서 본 해양공원 쪽 바다. 꽤 멀리까지 사람들이 걸어나가서 낚시도 한다. 
공항가는 열차에서 본 광경. 지프차가 언 바다 위를 씽씽 달린다. 엄청 꽝꽝 얼었다는 소리.

그렇게 추운데 어떻게 입고 갔나, 나 역시 가기 전까지 친구와 만나서 했던 얘기가 ‘뭘 입고 가야는 가’였다.

가서 뭘 먹고 뭘 보고 이야기보다 뭘 입냐 연구만 했던 것 같다. 결론은 '껴입기'다.

껴입고, 또 껴입었다. 각종 방한 제품들을 잘 활용하여 춥지않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보낼 수 있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큰 명절이라, 크리스마스 기간에 유럽을 방문하면 문 닫은 가게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를 믿는지라,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다. 그래서 12월 25일에 방문한다면 크리스마스 시즌 직전이라 블라디보스톡이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동양권을 벗어나 크리스마스 연휴를 유럽에서 보내고 싶다면 추천한다.(어쨌든 유럽 땅이다..)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분위기! (feat. 왕창 껴입은 나)

블라디보스톡 내엔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몇 군데 있다. 눈도 많이 와서 아직 치우지 않은 흔적, 녹아서 질퍽거리는 회색 눈, 꽝꽝 언 바닥 등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을 거리라 해도 정교회 사원은 반짝반짝 깨끗하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번쩍거려서 아침마다 누가 닦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키릴 문자를 읽지 못해 건물 내 설명들을 읽지 못하지만 실내 촬영을 엄격히 금할 정도로 정숙한 분위기였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큰 사원인 빠끄롭스키 사원(좌)과 해양공원에 있는이고르 체르니곱스키 사원(우)


건조식 사우나, 반야를 설원과 함께 즐길 수 있다.

뜨거운 사우나 안에 있다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반야를 눈밭에서 즐길 수 있다. 눈이 녹고 나서는 바다 안에 들어갔다 나온다는데 한겨울의 블라디보스톡은 바다가 얼어있어서 들어갈 수 없으나 대신 새하얀 눈밭과 살 애리는 강풍이 기다리고 있다. 수영복을 입고 즐기는 반야인데 영하의 날씨에 괜찮냐 물으신다면 No problem! 제대로 사우나를 즐기고만 나온다면, 오히려 시원하다 느껴질 정도다. <짠내 투어>에 나온 반야보다는 <사십춘기>에 나온 반야가 야외와 함께 즐길 수 있어 재밌고 루스키 섬 내에도 반야와 함께 숙박을 할 수 있는 리조트가 있다고 한다. 

100도 사우나를 견디다가 나오면 영하날씨는 아무것도 아니다(?)

냉면은 겨울에 먹는 거랬다. 2018 최고 인기 음식, 평양냉면이 기다린다.

지도상 블라디보스톡은 북한 땅과 멀지가 않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북한 사람들도 종종 마주칠 수 있는데 북한 사람들과 말을 섞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북한 식당인 ‘평양관’이다.

나로선 북한 사람을 판문점에서 멀리서 본 거 빼곤 처음 대화해본 거라, 주문 외엔 아무 말도 못 하였지만(무슨 말을 하겠어) 주문을 하면서 말을 주고받는 것도 신기했다. 가게 내부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직원들 사진을 찍으려 하면 찍지 말라고 한단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손님이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다들 조용히 먹게만 되는 북한 식당의 분위기란.

북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평양관> 우리말로 편히 주문할 수 있다.

이게 정말 평양냉면의 맛인가 잘은 모르겠지만(나는 괜찮았는데 친구는 맛없다고 했다) 광어 찜은 정말 맛있었다. 밑반찬들도 꽤 괜찮았고, 가기 전까지 조금 무서웠지만 겪어보니 그냥.. 말통 하는 식당일 뿐! 시내와 조금 거리는 있지만, 올해 최고 인기 음식 중 하나인 평양냉면을 경험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한겨울에 길거리 음식은 추운 날씨 중 백미이다.

곰 새우, 킹크랩, 샤슬릭 등 블라디보스톡에는 러시아 전통 식당들도 많지만, 길거리 음식도 푸짐하고 맛있다. 심지어 싸다! 숙소를 아르바트 거리 근처로 잡아놓거나 큰 마트 6층을 잘 활용하여 길거리 음식으로 푸짐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길거리에서 먹기엔 너무 추워서 먹다가 음식이 다 식어 버리는 현상을 만날 수 있다)

빨간 카트만 찾으면 길거리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야채호빵 같은 삐얀세. 꽤 든든하다. 뜨끈한 상태에서 주지만 추워서 금방 식는다.
튀김 왕만두 같은 체부레끼(아래) 와 케밥같은 샤우르마(위).추우니 금방 배고파서 길거리 음식을 자주 먹었다.


추울 땐 달달한 거 먹는 거랬어.

러시아는 차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차를 달달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홍차에도, 커피에도 쨈이나 코코아, 설탕, 과일 슬라이스 등을 넣어 먹기도 한다고.  까마로바 중앙시장에서 녹차, 홍차 할 것 없이 꽤 많은 종류의 차를 파는 것을 보았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과일차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홍차에 레몬을 넣어 대접한 후, 레몬티는 러시아의 대표 차가 되었다고 한다. 

까마로바 중앙시장의 찻집. 빽빽하게 여러나라의 차가 준비되어있다. 
한 카페에 붙어있던 커피에 관한 일러스트와 인포그래픽.


차뿐만 아니라 2010년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러시아에도 웰빙 바람이 불어 러시아의 커피 원두에 대한 소비량도 크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 또한 재밌는 커피집이 많았다. 또, 차가 발달한 만큼 달달한 디저트도 많았다. 

굼 옛 마당에 있는 에클레어 전문 카페 <프스삐쉬까>
한인학교 '고려사범대학'이 있던 건물에 위치한 <삐라고바야>. 작고 달달한 당근케이크가 커피와 어울린다.
러시아의 유명 카페브랜드 <샤깔라드니짜>. 러시아어로 '초콜릿'이란 뜻이다. 코코아가 유명하지만 푸드류도 다양하다.
에칭아트를 더한 러시아식 커피 '라프'를 즐길 수 있는 <프로코피>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좋았던 카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커피숍은 아무래도 ‘해적 커피’ 일 것이다. 스타벅스의 로고가 얼핏 생각나는 이 커피집은.. 생각보다 맛은 별로였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의 로컬 카페들을 더 추천한다. 


블라디보스톡 TMI

최근 몇 년 새 갑자기 블라디보스토크가 인기지?

해군기지가 있어서 러시아인도 방문이 까다로웠던 블라디보스톡.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며 1992년 내외부에 오픈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블라디보스톡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현대호텔이며(현재는 롯데호텔에서 인수하여 롯데호텔로 불린다) 블라디보스톡의 번화가인 아르바트 거리는 KT에서 조성했다고 한다. 2014년이 되며 단기방문에 대한 비자가 없어지며 관광객이 드나들기 용이해졌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2013년 <꽃보다 할아버지> 이후 유럽여행 붐과도 시기가 잘 맞은 것 같다. 한국 사회인들, 일주일 이상 휴가 내기 힘들어서 일본, 중국, 동남아 등만 다니다가 새로운 곳으로 눈 돌리기도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잘 통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꿀이 유명하다고 해서 꿀 가게를 간 적이 있었다. 생존 영어는 되는지라, “What is best thing?”이라고 물어봤는데 가게 아주머니가 영어를 모르셔서 못 알아들으셨다. 그때 동행하던 분이 “제일 잘 나가는 거! 짱! 짱!” 하고 엄지를 세워서 한국말로 물어보니 알아들으시고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꿀을 추천해주셨다.

블라디보스톡의 연해주 꿀가게. 천연꿀이 가득하다.

한국기업들이 투자한 곳도 있을 만큼 블라디보스톡은 한국인도 많지만, 북한 사람들도 많이 있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톡 내 마트만 돌아도 북한 사람들을 종종 마주칠 수도 있고 한국말은 못하지만 고려인들도 있었다. (고려인한테 윙크 받음)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곳에 한국인들이 거주해 신한촌도 있으니 블라디보스톡 사람들에겐 영어보단 한국어 듣는 것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물론, 간단한 러시아 인사 정도는 익혀두고 가는 것은 예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와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톡역

블라디보스톡은 다른 유럽처럼 긴 역사의 도시도 아니었고 개방도 늦어 다소 우리가 아는 유럽 느낌은 없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수 있어 열차로 유럽여행을 하거나 끝내는 사람들에겐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스쳐 지나가기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였다. 어떤 이들은 독립운동의 관점으로, 어떤 이들은 유럽여행의 관점으로, 어떤 이들은 러시아 문화를 가까이 접하기 위해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나의 경우엔 북유럽의 설원을 간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한 겨울의 블라디보스톡을 선택했었다.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사진과 영상들이 어떻게든 더위를 견뎌내고 싶은 당신의 주파수와 맞춰졌기를. 



참고

- <블라디보스톡 Tripful>, 이지북스 

 - 블라디보스토크, 요새에서 도시로(이진현)  http:// goo.gl/bpav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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