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한 달 살기
"이랴, 이랴. 워, 워, 워."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쟁기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들의 소 모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땅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을 시기가 되었다.
"몸도 아픈데 이제 그만 일해. 일하지 말고 그냥 놀아 "
늘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던 엄마에게 말을 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땅이 있는데 어떻게 그 땅을 놀려야 살 때까지 벌어야제"
그랬다.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온 농부에게 땅은 먹을 것을 내어주고 돈을 벌어주었다. 땅은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고 연인이자 남편이었다. 농부에게 땅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생명줄인 것이다.
시골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척박한 빈 땅에 꽃씨를 뿌렸었다. 꽃씨를 뿌린 다음날 때마침 비가 내렸다. 싹이 나오려나 생각을 했는데 일주일 후 신기하게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자리에 씨앗을 무더기로 던져 넣었는지 너무 많은 싹이 자리다툼을 하는 듯했다. 싹이 이렇게 많이 나올 줄 알았다면 좀 거리두기를 하고 뿌릴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엄마를 모시고 집 근처 산책을 나갔다. 경작을 멈춘 밭에 당근 싹처럼 보이는 모종이 보이길래 엄마에게 당근 싹이냐고 물어보았다. 싹을 자세히 보시는 것 같더니 당근 싹이 맞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당근 싹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엄마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경작을 하지 않은 땅에서 싹이 나고 있는 것은 섬마을의 여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노란 꽃모종처럼 보였다.
농부들은 가을에 추수를 하면 거두어들인 열매들 중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었다가 다음 해 땅에 심을 씨앗으로 사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급자족이었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씨앗도 모종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꽃씨에서 싹이 나기 시작하자 더 많이 씨앗을 뿌려 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문제는 땅이었다. 섬마을 농부가 창고를 허물고 난 후 밭으로 사용하라고 조금 남기어 놓은 땅이 너무 돌 밭이었기 때문이다. 씨앗을 뿌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땅이었다.
오래전 밭을 늘려 가던 시절 엄마는 돌밭에 있던 돌들을 호미 하나로 모두 골라냈었다. 밭에서 주운 돌들로는 밭의 경계를 표시하는 담을 쌓았다. 어린 조카를 데리고 시골에 방문했다가 엄마를 도와 돌들을 줍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호미를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박혀있던 돌들을 파내기가 쉽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한두 개 돌들을 파내다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모내기 판을 만들던 곳에서 오랫동안 널브러져 있던 상토를 발견했다. 무거운 흙 한 포대를 힘겹게 들고 와 돌밭에 뿌려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당근이었을지도 모를 꽃모종을 옮겨와 심었다. 살아남을까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나가 보니 꽃모종이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면 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옮겨 심은 꽃모종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자 이 자갈밭에 상토를 뿌리면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오이, 호박, 수박, 참외, 상추 씨앗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포크리포트 (지게차)의 도움을 받아 4~5포대를 일단 옮겨왔다. 그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돌밭에는 흙이 많이 필요했다. 제대로 된 밭을 만들려면 더 많은 흙이 필요했다.
바쁜 섬마을 농부에게 나의 한 달 시골 살기 놀이 같은 밭 만들기에 흙을 더 옮겨달라고 더 부탁할 수 없었다. 다행히 창고에서 노란 리어카를 발견하고 상토 포대를 나르기 시작했다. 나무 리어카만 보고 자랐다가 노란색 리카가 신선했다. 흙을 담는데도 재미가 있었다. 혼자서 생각보다 무거운 상토를 노란 리어카에 담고 흙을 나르고 다시 상토를 돌짝밭위에 깔았다.
마지막으로 씨앗을 뿌렸다. 이번에는 좀 더 간격을 두고 씨앗을 꼭꼭 심었다. 씨앗을 심고 나니 또 비가 내린다. 일주일 후 내가 만든 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싹이 잘 나 주겠지라는 기대감에 마음이 벌써 부풀어 오른다.
"다다다 다다다 "
오늘도 트랙터 한 대가 동네의 이 밭 저 밭으로 움직이며 거름을 뿌리고 땅의 흙을 갈아엎고 있다.
"음 머어 ~"
어린 시절 들었던 멍에를 멘 소의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랴 이랴. "
그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인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리는 변했지만 기경한 땅에는 씨앗을 내리고 싹을 틔울 것이다. 어제와 같은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