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에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들은 모두 부푼 꿈을 안고 도시로 도시로 떠났다. 외딴섬 시골 촌구석에만 지냈던 우리는 도시의 화려함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도시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도시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친구들 중 몇 명은 고향의 품을 그리워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아침 산책을 나가던 길에 흑염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던 친구와 만났다. 30대 초반에 고향으로 돌아와 계속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다. 서로 안부를 묻고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가 소고기를 사 왔으니 먹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괜찮다며 사양을 했을 텐데 이젠 나도 아줌마가 다 됐는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친구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예전에는 길어야 2,3일 정도 시골에 머물다 떠났기 때문에 거의 집에서만 지내다가 도시로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 시골 방문은 한 달이라는 시간의 넉넉함도 있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입구에 아저씨 한 명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아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짧게 인사를 하고 친구네 집으로 들어섰다. 친구가 문을 열어 주어 방으로 들어갔더니 소고기를 사 온 친구도 함께 앉아 있었다. 고기를 사 온 친구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의 얼굴은 오래전 만난 것 같은 친숙 했다. 어릴 적 자주 봐왔던 친구의 아버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어릴 적 너 모습은 없고 어디서 본듯한 형이나 아버지 얼굴을 닮았다. "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모두 그렇게 부모의 얼굴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동네에 살고 있던 친구도 착석을 하고 입구에 서 있었던 아저씨로 보였던 선배 한 명도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다른 동네 살고 있던 친구가 다짜고짜 말했다.
"너 별명이 깡패였지 "
"석이가 너한테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 "
"너 발차기로 많이 맞았다고... "
"친구야 미안하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친구에게 어린 시절 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남자아이들을 많이 때리고 다녔던 것이다.
남자 동창생들은 동네 여자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남자 동창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동네 여자 친구 중 가장 인기녀는 이름에 임자가 들어가는 두 명의 여자 친구들이었다.
머리를 땋고 다니던 아이, 키가 큰 아이, 커트머리를 한 아이 남자 동창들은 한 명 한 명씩 동네 여자 친구들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자 친구들과 통화를 하고 싶어 했고 노래는 없지만 즉석 사랑의 콜센터를 진행해 보았다.
소고기를 사 온 친구의 부인은 필리핀에서 시집을 왔다. 그런 부인이 이번에 둘째 아이를 출산을 했다고 한다. 친구에게는 늦둥이였다. 축하할 일이었다. 그 축하 턱으로 고기를 사 와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였다.
나를 부른 친구도 오랫동안 시골 노총각으로 지다가 몇 년 전 국제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 다섯 살이 된 아이가 있다. 친구의 어린 시절처럼 눈이 크고 이국적인 마스크의 잘생긴 꼬마였다.
"너 성공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성공한 친구야"
남자 동창들은 친구가 부러운 듯 말했다. 그 친구의 부인은 20살이나 어린 나이였고 장모님은 친구의 나이와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의 모습과 꼭 닮은 아이는 가장 좋은 유전자만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우연히 친구의 부인을 마트에서 스쳐 지나갔는데 어린 나이에 미인이었다.
시골에서 국제결혼을 한 두 친구들은 모두 필리핀 가족들을 한국으로 모셔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정말 잘 됐다."
오랫동안 장가를 가지 못한 농촌 노총각으로 혼자 지내는 것을 보며 마음에 안쓰러움이 있었는데 어엿한 가정을 이루어 잘 정착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의 일인 것 마냥 몹시 기뻤다.
어린 시절 이야기며 요즘 사는 이야기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엄마에게 드릴 소고기 몇 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나를 부른 친구가 엄마에게 드리라고 과일까지 챙겨주었다. 비가 내리는 길을 소고기와 과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걸어 오는 길 내내 고향의 따뜻함이 마음에 촉촉이 스며들어왔다.
고향을 든든히 지키는 친구들이 있고, 고향을 찾아올 때마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고향에 살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와 시골에서의 추억을 더 많이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 영화처럼 잔잔한 시골 일상을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