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를 모시고 노인정에 갔다. 노인정 벽에 관산리 부녀회 엄마들의 청춘이 담겨 있는 사진 한 장이 걸려있었다. 어딘가 나들이를 가셨는지 모두 빨강 분홍 옷을 입으시고 찍으신 단체 사진이었다. 10년 전 사진 속 엄마는 아직 젊은 시골 아줌마 같았다. 시골 어르신들은 매번 봄과 가을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나들이를 떠났다. 엄마의 머리는 지금처럼 흰머리도 아니었고 아줌마들의 상징인 뽀글이 파마머리의 검은색이었다. 엄마의 청춘이 노인정에 담겨 있었다.
원래 상촌 노인정은 우리 집 앞에 있는 샘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상촌 운모실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인정이었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광주로 떠나고 난 후 어르신들이 자주 찾지 않게 되었는데 다음 해에 면에서 어르신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는 운모실에 새로운 노인정을 지어 주었다. 지난해 겨울 집 앞에 있던 빈 노인정도 철거되었다.
시골에 내려와 노인정에 찾아가는 것을 피했다. 동네를 지나며 몇 분 어르신들과만 인사를 나누고 할머니들이 모이는 노인정에 가는 것은 거리 두기를 했다. 할머니들도 노인정에 모이기보다는 볕이 드는 큰길에 잠시 모였다가 헤어지시고 하는 것 같았다.
엄마를 모시고 마트에 다녀오는 길 할머니들이 볕이 좋은 큰길에 모여 있길래 차 문을 내리고 인사를 드렸다. 어르신들은 엄마인 것을 아시고 반가워하셨다." 온 것은 알았는데 못 찾아가 봤다."라며 나에게 "아직도 그대로냐?"라며 엄마의 상태를 물어보셨고 엄마에게 "건강해 보인다."라는 이야기와 "딸이 돌봐서 그런지 얼굴이 좋아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얼마나 있을 거냐는 질문에 한 달 정도 있을 거라고 말했더니 엄마에게 노인정으로 놀러 오라는 말을 하셨지만 동네 어르신들도 노인정에 요즘 잘 모이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이렇게 갑자기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할머니 중 가장 젊으신 yh 엄마가 어젯밤 갑자기 119에 실려가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모여 계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말을 못 하신다고 한다. 풍에 맞으신 것 같았다. 어르신 한 분이 또 삶의 회오리바람 속에 계시며 가족은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 몰려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yh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셔서 다음 날 노인정에 가보자고 하셨다. 먼저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있는지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떡과 쑥떡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노인정에는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라는 안내문과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놓고 갔는지 노인정에는 과일상자가 놓여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떡을 과일상자 옆에 놓았다. 노인정에는 어르신들이 아무도 없었다.
노인정 바로 뒤쪽 밭에서 재천네 엄마가 일을 하고 계셨다. 지난겨울 요양원에 가셨다가 봄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신 어르신이다. 인사를 드렸더니 엄마를 모시고 노인정에 오라고 하셨다. 엄마를 모시고 왔다. 재천네 엄마도 오셨다. 동네의 몸이 아직 건강한 할머니들은 일당이 세다는 말에 감자를 심으러 모두 가셨다고 한다.
재천네 엄마에게 엄마를 부탁하고 나는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한두 시간이 지나 잘 지내시는 궁금하여 노인정에 가보았다. 엄마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집에 가실 거냐고 여쭈어보니 더 계시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할머니 몇 분들도 오시고 누군가 노인정에 놓고 간 과일을 서로 나누시고 엄마가 들고 간 떡을 나누어 드셨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식사시간이 되어 엄마를 모시러 노인정에 갔다. 몇몇 어르신들이 더 노인정으로 찾아왔지만 피곤하셨는지 엄마는 집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재천네 엄마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요양원이 좋다더라 말씀을 하신다. 요양원에 가실 거냐고 여쭈어보니 딸을 생각하면 가시고 싶지만 내가 함께 가지 않으면 가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의 노인정 친구들과의 만남이 즐거우셨는지 엄마는 내일도 노인정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재천네 엄마도" 내일 아침에 데려다 놔라 "말씀하신다.
이제 엄마들은 모두 허리가 굽으시고 귀가 안 들리시고 다리가 불편하신다. 누군가는 엄마처럼 갑자기 풍에 맞으셨고 누군가는 노망이 나시 기도 했다. 일찍 세상을 뜨신 분들도 많다. 그러나 노인정에 오면 모두 다시 젊은 시절 엄마들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다.
여전히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의 집을 지키기를 원하고 간병인이 방문하지만 밭일을 하시고 가끔 노인정에 모여 부녀회원들과 수다를 떠시고 음식을 나누어 드시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또 꽃 피는 날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실 계획을 세우실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인정에 걸려있는 엄마들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엄마의 청춘이 노인정에 담겨 있었다. 엄마들의 청춘이 아직도 노인정에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