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람들은 장날을 기다린다. 마량에서는 오일마다 장이 열렸다. 우리 섬에서는 시간을 맞추어 버스를 기다려 타고 다시 배 시간을 맞추어 배를 타고 가야만 했던 마량 장이었는데 이제는 자동차로 단 한 번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있어 마량을 나간 날인데 마침 5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일을 보고 나오니 그곳이 바로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 광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마량 터미널이었다. 내가 서울을 오가던 시절에는 마량 터미널이 아주 넓은 대기실이었는데 지금은 매표소에 의자 몇 개만 놓여 있었다. 나머지 대기실이었던 공간은 칸을 막고 상가로 변해있었다. 터미널에 택배 상자가 많고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었다.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서 인지 마량 터미널의 유동인구가 줄어든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시골에서 서는 오일 장날이니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었다. 꽃모종과 채소 모종 등이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텃밭에 씨앗을 안 뿌렸다면 모종을 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제일 사고 싶었던 시골생활필수품이다. 햇볕으로부터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목 토시가 필요했다. 여름 필수품 쿨 넥워머 5,000원짜리도 있었지만 그냥 저렴한 것으로 3장을 3,000원을 주고 구매했다. 운전을 할 때 필요한 팔 토시도 구매를 하고 잠깐 시장을 구경했다. 그러나 딱히 살만한 물건은 없었다.
시골 사람들에게 마량은 장이 서거나 도시를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탈 때만 나오던 곳이었다. 그러나 장이서지 않더라도 마량을 오기도 했다. 바로 목욕을 하기 위해 서였다. 시골에는 탕에 들어가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마량을 나와야만 탕이 있는 목욕탕에서 시원하게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병약해지시던 시절 오빠는 시골에 내려오면 아버지를 모시고 마량 목욕탕을 다녔었다. 그 시절에는 아직 약산까지 한 번에 차를 타고 다닐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고금도에서 배를 타고 다녀야 했는데도 오빠는 아버지를 모시고 마량으로 목욕탕을 다녔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마량을 나왔다면 딸들은 엄마를 모시고 마량을 나왔다. 엄마가 시골집에 혼자 계시던 시절 언니와 함께 시골을 내려오면 엄마를 모시고 마량 목욕탕에 다녔다. 그날 이후 언니와 시골집을 내려오면 세 모녀가 함께 목욕탕을 갔다. 엄마는 딸들이 내려와 마량으로 목욕탕을 가는 날을 늘 기다리셨다.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추억의 마량 해수탕이 보였다. 지금은 엄마를 모시고 마량 목욕탕에 더 이상 갈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 시절 섬마을 사람들은 마량 장날이 서는 날을 달력에 크게 표시해 놓고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마량 장날이 되면 엄마는 아침 일찍 배를 타고 섬을 나갔다가, 오후 늦게 배를 타고 다시 섬으로 들어왔다. 섬으로 들어오는 엄마들의 손과 머리에는 시골에 필요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려 있었다. 엄마의 보따리에는 농사에 필요한 씨앗뿐만이 아니라 나의 새 옷도 가방도 신발도 들어있었다.
엄마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면 장을 보러 나오고 명절을 쇠기 위해 장을 보러 나왔다. 특히 자식들이 도시에서 내려온다고 하면 엄마는 장을 보러 나와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해 두었다. 이제는 일부러 들르지 않는 한 마량에 올 일도 없고 마량 장날을 기다렸다 올 일도 없어졌지만 오일장을 잠시 구경한 것만으로 옛 추억이 떠올라 정겨워지는 마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