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를 방문하며

by 약산진달래

시골 모교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어 모처럼 중학교에 방문했다. 시골 풍경은 그대로인데 학교는 과거의 모습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신생 도시에 새롭게 건축된 중고등학교 같은 느낌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와 오래달리기 시합을 하던 넓은 운동장은 반 이상이 사라지고 그곳에 중학교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오래전 중학교 건물이 있었던 곳에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 닦여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와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여기 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위를 올려다보니 저수지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아주 먼 곳에 저수지가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생각보다 저수지가 가까이 있었다. 가끔 공부하기 싫은 남자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저수지로 도망을 갔다. 선생님은 저수지에서 학생을 잡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동창생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중학교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사이여서 인지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반갑게 포옹을 하며 서로' 어린 시절 그대로다'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교복을 입은 후배 학생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우리가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40명이 넘었는데 섬을 떠난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학생들의 숫자도 많이 줄었다. 중학생은 전교생이 20여 명, 고등학생 40여 명뿐이라고 했다. 무엇이 즐거운지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속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어린시절 내 모습이 떠올려 졌다.


학교 교정을 한 바퀴 돌며 학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린 시절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담쟁이 풀이 무성하게 자란 벽을 지나다 담쟁이 풀을 꺾어 잎사귀를 떼어내고 쌍꺼풀을 만들며 놀았던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실제로 쌍꺼풀을 만들며 어린시절 소녀들처럼 깔깔거렸다. 정원사의 손길에 잘 다듬어진 교정의 나무와 꽃들을 둘러 보았다. 어린 시절 학교에 심어졌던 나무도 있었고 새롭게 심어진 나무들도 보였다.


학교 하면 잊혀지지 않는 상징이 있는데 바로 책 읽는 소녀와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면 책 읽는 소녀 동상 앞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동상의 포즈를 취해보곤 했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듯 하게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학교가 재건축을 하며 책 읽는 소녀상은 없어졌지만 이순신 장군 동상은 여전히 금색으로 새 옷을 입고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동상의 부속물들이 부셔서 남겨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상은 마을 유지의 이름으로 기증된 동상이라 남겨진 것이라 했다.


많은 것들이 변한 학교였지만 학교 입구에는 여전히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우람하게 서 있었다.

새롭게 학교를 건축 하면서 은행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은행잎이 너무 많이 떨어져 청소를 해야 하고 은행 열매 냄새도 강해서 였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졸업생들이 학교를 세우며 심어진 오래된 은행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반대했다고 한다. 졸업생들 덕분에 은행나무 두 그루는 여전히 학교 입구를 지키며 학교를 들어오고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은행나무보다 훨씬 우람하고 아름드리 푸르른 은행잎이었다.


조용한 교정을 나와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자꾸 뒤를 돌아봐지게 된다. 누군가 나를 계속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서이다. 학교를 지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어린 시절 학교 교정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모교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처럼 학교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도 그 시절 시끌벅적한 교정에 재잘거리며 몰려다니던 섬마을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섬머스마같은 모습을 한 어린 여학생이 학교 교정으로 즐겁게 뛰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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