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두 명쯤은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을 것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거치며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선생님들을 만난다.
그 많은 선생님들 중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두 명 정도 손꼽아진다. 그중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섬마을 중학교에 총각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동백꽃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은 군대를 막 제대하고 첫 부임지로 오신 것이 우리 섬마을 중학교였다. 선생님은 군대 시절 군악대 생활을 했고 트럼펫을 불렀다고 한다. 음악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래는 잘 못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은 키카 훤칠했고 웃을 때는 윗니에 뻐드랑니가 살짝 엿보였다. 우리 섬마을의 투박한 말투와는 다른 도회지적인 말씨를 썼다. 선생님은 부임해 오자마자 섬마을의 중학생 소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은 중2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반은 시험을 보면 언제나 전교 꼴등을 도맡아 했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늘 전교 꼴등을 하자 어떻게 해서든지 시험 성적을 올려 꼴등에서 벗어나 보려고 했지만 시험을 보면 여전히 전교 꼴등은 우리 반 차지가 되었다.
선생님은 꼴등반을 이끌면서 맘고생을 많이 하셨다. 교장선생님에게 훈시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한 번은 기대했던 시험에서 우리 반이 또 꼴등을 차지하자 선생님은 아주 낙담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율학습 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반장이었던 친구와 둘이서 선생님을 찾아 나섰는데 선생님은 학교 위에 있는 저수지에 앉아서 눈물을 훌쩍이고 계셨다. 선생님을 모시고 내려오면서 어린 우리들은 선생님을 위로했고, 다음번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잘 보겠다고 약속드렸다.
우리 반은 선생님을 위해서 어떻게든 꼴찌를 면해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지 시험에서 성적이 올랐고 드디어 전교 꼴등을 면하게 되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기쁨은 물론이고 선생님의 기쁨은 더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 전원에게 볼펜을 선물로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153 모나미 볼펜에 ‘약산 중학교 2학년 4반’이 또렷이 적혀 있던 기념 볼펜이었다. 한 번도 그런 기념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볼펜을 받고 감동 또 감동을 받았다.
기념 볼펜 한 자루를 반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면서 섬마을 총각 선생님은 영원히 우리반 아이들 가슴속에 진정한 스승으로 기록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선생님의 소식을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장학사를 지내기도 하고 교장선생님 지내시다 은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던 친구들은 선생님의 은퇴식에 다녀왔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때 그 시절 말썽쟁이 꼴등반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부를 물어 왔다고 한다.
그 옛날 섬마을 총각 선생님을 우리가 여전히 기억하듯 처음 부임한 섬마을 중학교의 꼴등반 제자들을 선생님도 잊지 못하셨던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오랜만에 선생님의 sns에 감사 인사라도 남겨야겠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스승의 날이면 울려 퍼졌던 노래를 불러보며 이 시대는 선생님은 너무 많지만 진정한 스승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갖는다.
오롯이 제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진정한 스승의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걸어가는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