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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 고롱나무의 추억

by 약산진달래 Sep 02. 2021

시골길을 가다 보면 마을마다 그 마을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정자나무들이 한 그루씩 있다.  잎이 무성한 정자나무 아래는 지친 몸을 쉬어가는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아도 약속한 것처럼 모여들어 정담을 나누는 곳이다. 정자나무 아래로 가면 언제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웃음꽃이 피어났다. 


우리 마을에도 한그루의 정자나무가 있다. 그 나무의 이름은 고롱나무이다. 고롱나무 앞으로 작은 또랑이 흐르고 있다. 고롱나무가 앞에 있는 집에는 매일 술을 드시는 아저씨와 그것을 못마땅해하는 쪽진 머리 아줌마가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정자나무 아래로 무더운 여름이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여들었다. 

동네 어르신 중 누군가가 이발기를 사자 고롱나무 아래는 갑자기 미용실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정자나무 옆에 있는 작은 또랑에서 미역을 감고 놀다가 나무 그늘에 쉬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타기 놀이를 했다.


여름이면 아름드리 푸르른 나무는 무더운 날씨에 농사일에 지친 어르신들의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었고 사랑방이 되었다. 수박을 근처에 있는 샘에 담가 두었다가 수박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누가 모이자고 하지 않아도 더위를 피해 고롱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동네 대소사를 나누기도 하고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보낸 음식을 함께 먹기도 했다. 고롱나무 아래는 모든 동네 일들이 미주알고주알 나누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젊었던 어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세월과 함께 고롱나무도 나이테가 늘어났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러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났다가 1년이면 한두 번씩 돌아오더니 세월이 흐르며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도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들의 시간과 함께 고롱나무의 시간도 함께 흘러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정자나무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앙상한 고롱나무만 남았다. 고롱나무가 있는 앞집의 부부 중 쪽진 머리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90이 넘은 술을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떠나시고 이제 집마저 빈집이 되었다. 고롱나무를 찾던 마을 어르신들의 발걸음도 이제 멈추어 버렸다. 


쓸쓸히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홀로 기다리는 고롱나무, 그 주인을 기다리는 빈집, 이곳은 벌써 생명이 움트는 봄이 찾아오고 있건만 외로운 고롱나무와 빈집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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