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깨가 길에 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지 않은 도로에는 깨들이 가을 햇볕에 말려져 있다. 깨를 수확하는 시기인 겄다. 그렇다면 들깨를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골 어르신들에게서 올해 깨 수확이 좋지 않아 깨 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들깨도 비쌀 것이다.
작은 텃밭에도 들깨 씨앗을 뿌렸다. 가로등이 있는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했으나 다행히 들깨는 잘 자라주었다. 무성하던 상추가 텃밭에서 사라지자, 원하던 들깻잎을 따먹을 수 있게 되었다. 들깨 장아찌도 한두 번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들깨 재배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씨만 뿌렸을 뿐인데 작은 들깨밭의 들깨는 자랄 대로 자랐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을 피우더니 이제 열매를 맺어 씨앗을 품게 되었다. 적은 양을 심었기 때문에 들깨 수확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익어가는 들깨를 보면서도 텃밭에서 뽑아낼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들깨 어서 비어야 안 비면 깨다 떨어져 뿐다"
윗집 할머니는 우리 텃밭의 들깨를 보시더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나 보다 들깨를 베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그냥 내어버려 두려고 생각했는데 적은 양의 들깨 수확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뒹굴어 다니는 낫을 들고 와 들깨를 베자 할머니는 답답했던지 직접 들깨를 베는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베어낸 들깨를 담을 것이 없었다.
베어진 들깨를 놓을 돗자리를 찾다가 창고에서 엄마가 사용하시던 키를 들고 나왔다. 할머니에게서 낫을 받아 들고 들깨를 베기 시작했는데 반은 뽑히고 반은 잘라낸 것 같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키안에 다 다듬을 수 없었다. 다시 벤 들깨를 널을만한 것을 찾다가 오래전 김장할 때 사용하라고 사드린 김장용 돗자리가 생각이 났다. 그 빨간 김장용 돗자리를 들고 와 들깨를 말리니 양이 딱 맞았다.
가을볕이 들깨 말리기 딱 좋다. 우리 집 마당에는 들깨가 녈려 있다. 들깨를 수확해 무엇을 할까? 들기름을 짤 양은 안되지만 들깨 가루로 만들면 한두 번 요리에 넣을 수 있는 양은 나와줄 것이다. 아니면 내년에 다시 들깨 씨를 뿌릴 때 씨앗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씨앗이 다시 씨앗으로 재탄생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