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산진달래 Sep 21. 2021

사라진 밤때문에 잠못드는 가을밤

밤이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 안의  밤알이 모두 사라졌다. 누군가 밤알을 까서 가져간 것이다. 누가 가져갔을까?


뒷밭으로 올라가는 길에 밤나무 6그루가 있었다. 지금은 세 그루가 베어지고 세 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추석 즈음 시골에 내려올 때면 언제나 이미 밤나무의 밤은 떨어져 누군가가 주워 가고 빈 밤 껍데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나뒹구는 밤송이 껍질을 빗자루로 쓸어 밤나무 아래로 밀어 넣거나 불에 태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밤송이들로 밤나무 아래가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추석에 시골에 내려왔을 때 다행히 아무도 밤 서리를 해가지 않았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려서 밤이 익지도 않고 이미 많이 떨어져 버린 것이 많아 밤 수확은 많지가 않았다. 재작년에 추석에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이미 밤알은 누군가에 의해 모두 까져 있었고 그때도 빈 밤송이만 나뒹굴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밤을 주워 갔을까 사라진 밤을 서리해간 사람에 대해 추측을 하곤 했다.



 엄마가 시골을 떠난 후 밤 수확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올해는 주말마다 거의 시골에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밤 수확을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두 주 전만 해도 밤이 한두 알 바람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밤이 익지 않았다.


두 주 만에 내려온 사골이다. 밤이 익었기를 기대하며 시골에 내려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밤나무 아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떨어진 밤송이의 밤알이 모두 까져 있고 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지난주 오라버니가 내려와 떨어진 밤알을 주어 갔다는 것을 알았다.  몇 알은 줍지 못했다고 알려주었다.


떨어진 밤송이의 입들은 모두 벌려져 있는데 도대체 누가 주어간 것이란 말인가? 사라진 밤을 가져가신 분은 바로 양파 할머니였다. 오늘 새벽에도 우리 집에 오셔서 밤을 주어가신 것이다. 어제도 밤에도 밤을 주어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껏 다른 사람이 밤을 주어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밤 서리 범인은 모두 양파 할머니였던 것이다.


늦은 오후 물건을 파는 트럭이 동네를 돌고 있어서 바나나라도 살까 하고 나갔다가 할머니들을 모두 만났다. 그때 양파 할머니도 옆에 계셔서 큰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집 밤 줏어가지 마세요. 제가 밤 때문에 내려왔는데 누가 다 주워 가서  밤이 하나도 없어요." 양파 할머니가 바로 옆에서 듣는 것 같기는 했는데 귀가 안 좋으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밤나무에 밤은 많이 열려 있었는데 떨어진 밤을 주워 간 분이 계셔서 올해도 밤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내일은 밤나무 아래 빈 밤송이 들을 치워야겠다.


양파 할머니는 자신의 집으로 넘어오는 밤나무 때문에 미치겠다며 밤나무 세 그루를 자르게 하더니 왜 남의 집 밤알은 탐내시는 것일까? 그냥 담 넘어오는 밤송이나 챙기셨으면 좋았을걸 생각하며 사라진 밤이 안타까워 잠 못 드는 가을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석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