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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Nov 01. 2021

가을 냉이 향기

겨울 채소를 심어놓은 텃밭에 쪽파 모종이 불안 불안하다. 잘 자라는 것 같더니 싹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쪽파를 한꺼번에 심어 영양이 부족한 것인지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아 물이 부족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엇갈이 배추는 벌레가 먹는지 구멍이 송송 나있다. 그 와중에 무싹만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열무가 아주 싱싱하다 무가 자라기 위해서는 열무를 솎아주어야 했다. 엇갈이 배추는 좀 더 자란 후에 솎아주기로 하고 일단 열무를 솎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쪽파 엇갈이 배추 무가 자라는 텃밭에는 봄 향기가 느껴지는 잡초들이 가득했다. 봄에 서야 볼 수 있었던 아주 작은 꽃들도 피어 있었다. 무슨 꽃인지 궁금했는데 냉이꽃였다. 냉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열무를 솎는 것은 재껴두고 냉이를 캐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밭은 냉이 밭이었던 것이다. 작고 하얀 방울이 송알송알 맺힌 꽃은 바로 냉이꽃이었던 것이다.


당장 호미를 찾아왔다. 제철인 봄에도 냉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가을이 되어서야 냉이의 생김새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냉이를 캐면서도 진짜 냉이인지 믿을 수 없었다. 냉이를 캐 냄새를 코끝으로 맡아가며 냉이임을 다시 확인하곤 했다. 그런데 이 밭은 냉이가 지천이었다. 상큼한 봄나물 냉이 향을 기억하며 호미질을 열심히 했더니 금방 냉이가 바구니로 가득 찼다.


냉이를 집에 가지고 와서도 진짜 냉이인지 계속 의심을 했다. 가을에 냉이라나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닭밥으로 줘버릴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기왕 해온 것이니 일단 냉이를 다듬었다. 냉이무침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잘 다듬어진 냉이를 깨끗이 씻은 수 냉이를 뜨거운 물에 데쳐냈다. 냉이를 삶은 물이 봄빛처럼 푸르렀다. 다시 찬물에 헹쿠어진 냉이를 물기를 짠 후 갖은양념으로 버 부려졌다. 마지막 참기를 한 방울을 넣고 냉이 무침이 완성되었다. 가을 냉이는 어떤 맛일까? 봄나물의 여왕처럼 그 맛을 느낄 수가 있을까? 사뭇 긴장되기까지 했다.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냉이를 무침이 한 잎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 입안에서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냉이 특유의 향기가 없었다. 봄날 그 상큼하고 푸릇한 향기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을까? 다시금 먹고 또 먹어보았지만 냉이 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가을에 먹는 냉이에게서 봄 향기를 찾으려 한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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