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와 엉덩이 방석을 챙기고, 토시를 팔에 끼였다. 맨손으로 으레 캘까 하다가 손톱에 흙이 들어가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장갑이 있길래 장갑도 챙겼다. 이 와중에 엄마가 타신 휠체어를 밀고 뒷밭으로 갔다. 그 뒤로 시골 강아지 막내가 쫄랑 쫄랑 따라왔다.
뒷밭에 지금은 창고가 있지만 엄마가 시골에 계실 때만 해도 모두 밭이었던 곳이다. 고추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깨도 심고 콩도 심고, 이밭은 엄마의 평생 일터였다. 아버지는 이밭에 유자를 심기도 했었다. 유자 판로를 찾지 못해 그 많다 유자나무는 모두 뽑혀버렸지만, 밭 가에는 유실수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감, 대추, 배, 귤 ,포도. 무화과 등 가을의 결실들이 이 밭에서 부모님의 삶과 함게 영글어 간 땅이었다.
작년에 오빠는 처음으로 창고 옆 빈 땅을 다시 일구어 작은 밭을 만들었다. 옥수수 토마토, 참외, 오이 등 여름 열매들이 척박한 땅에서 풀들과 경주하며 영글었던 곳이다.
밭에는 고구마가 한 세이랑 정도 심어져 있었다. 한도랑은 이미 고구마를 판 흔적으로 이랑의 흙으로 메꾸고 있었다. 오빠는 낫으로 내가 캐야 할 곳의 고구마 줄기를 쳐 놓았다.
"이것만 다 캐면 너 할 일 다한 거야"
고구마를 다 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일반 바짓가랑이 사이에 엉덩이 방석을 넣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장갑도 끼고 호미를 들었다. 슬슬 고구마를 캐려고 호미질을 했다.
어린 시절 고구마를 캘 때가 생각난다. 고구마 줄기만 잡아 다녀도 고구마가 주렁주렁 딸려 나왔었다. 땅속에 이렇게 많은 열매가 열려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 고구마를 신나게 캤던 기억을 소환하며 잘려나간 고구마 줄기 끝을 중심으로 호미질을 하며 땅을 팠다. 그런데 이런, 땅이 파이질 않았다. 한두 번 있는 힘껏 호미질을 했지만 여전히 땅은 단단했다. 호미는 땅을 파면서 고구마의 살 속으로 집혀 박혔고, 어느 정도 고구마의 형체가 보여 손으로 고구마를 잡아 빼려고 하면 고구마는 두 동강이 나버렸다. 기억 속의 고구마 캐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창고를 지으면서 땅은 돌땅이 되었고 그 위에 황토를 부었는데 황토가 땅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인지 호미질을 하기도 고구마를 캐기도 힘든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 다 안 했냐?"
계속 햇볕에 앉아 있기가 힘드셨던지 엄마가 그만하라고 재촉했다. 일단 고구마 캐기는 스톱해야 했다. 일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고 안 하던 호미질도 힘들었지만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땅을 파서 인지 허리가 아파졌다.
엄마를 방에 모셔다드리고 나서 쉬려고 했지만 마음이 고구마 밭으로 향했다. 다시 고구마 캐기 2차전에 돌입했다. 여전히 고구마 캐기는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차츰 속도가 붙었고 생채기를 남긴 고구마지만 덕분에 땅과의 호미질 사투는 곧 끝날 것 같았다. 황토 밭이어서인지 고구마는 크기가 실했다. 어린 시절 땅속에서 딸려 나온 고구마가 주먹보다 작았다면 오늘 수확한 고구마는 얼굴 반만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