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우는 것 중 아름답지 않은 식물이 있으랴 ! 그런데 나는 보고 싶지 않은 풀이 있다. 아니 꽃이 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풀들이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 이지만 유독 이식물의 꽃은 보고 싶지 않다.
시골에 내려와 한 달 살기를 시작할 때부터 신경 쓰이는 풀이었다. 그 관심이 이제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변한 것 같다. 보이기만 하면 뽑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내 눈에 너무 띈다. 몇 년 후에는 도로의 가로수길을 점령해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꽃모종이나 야채 모종일 거라는 착각에서부터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풀이었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모종을 조심스럽게 뽑아와 텃밭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심어 두었기 때문이다. 자라는 모습을 매일매일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어떤 채소가 될 것인지, 어떤 꽃을 피울 것인지 매일매일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다.
꽃도 채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저 뽑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 생명력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무서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봄철 여리디 여렸던 새싹이 여름날 대나무처런 단단한 나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꽃을 피우려는 모양새를 보니 한 모종에 수백 송이는 피울듯한 기세였다. 그 씨앗은 거의 도깨비가시 수준으로 변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술 더 떠서 땅에 뿌리가 남아있으면 언제나 새싹을 올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척박한 땅 어디든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자라는 이 식물은 만수국아재비였다.
여름날 그렇게 심어놓은 것들을 뽑아내고 텃밭 어딘가에 싹을 올려 보내는 것들도 모두 뽑아냈다. 그런데 모종을 가져온 곳이 고추밭이었다. 그 고추밭 가장자리에는 여전히 만수국아재비가 자라고 있었다. 고추밭에 고추를 따러 갈 때마다 뽑아냈지만 뽑아낸 그대로 흙이 조금이라도 뿌리에 남아있으면 죽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한 달 전에 뽑아낸 것이 여전히 살아서 꽃을 피울 준비 중이다. 그런데 오늘 발견한 것은 이제 새싹이 올라온 것들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놀라웠다. 지난봄 온 밭에 모종을 올려 보낸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밭의 풀을 베러 왔다가 만수국아재비가 보이는 대로 뽑아냈다. 다행히 잘 뽑혔다. 밭둑에는 가막사리 꽃이 도깨비바늘로 변해 하늘을 찌를 듯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만수국아재비 꽃이 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깨비바늘이 옷에 달라붙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헤치고 들어가 작은 것도 뽑아냈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기라도 하면 뽑아내고 지나가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또랑가에 가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차마 또랑까지는 내려가지 못하겠다. 저것까지 뽑아내야 할 텐데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만수국 아재비가 보기 싫다. 그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