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산진달래 Sep 12. 2023

고독사 어쩌면 나의 이야기

고독사 예방법


티브이를 틀었더니 [미운 우리 새끼]를 하고 있었다. 임원희라는 연예인이 고독사에 대한 공익광고를 찍었다. 그는 방송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무 일 없이도 연락할 수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명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다면 그 모임에 자신 대신 다른 한 사람을 넣어놓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세명은 생사 여부를 챙겨주는 모임인 것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고독사는 우리나라와는 아주 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이야기였으며 선진 국가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만 해도 고독사를 빈번하게 뉴스에서 들을 수 있다. 이제 고독사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서민 아파트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에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아파트 입구를 나갈 때면 자주 마주치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의 인상차림은 머리는 며칠 안 감듯 산발했고, 옷은 갈아입지 않아 지저분하며, 거기에 사람이 지나가나 안 지나 가나 상관없이 아파트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혹시 치매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식들은 찾아오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름이면 메리야스 차림으로 1층 아파트 복도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겨울이면 며칠이나 입은 것 같은 옷을 입고서 아파트 입구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그 할머니를 가까운 공원에서 볼 때도 있고 집 앞에서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파트 입구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게 대부분이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시면서 휠체어를 밀고 가는 나와 엄마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물론 할머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휠체어를 밀고 가는 엄마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지나가곤 한다. 그런 눈길이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요 근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며칠 전에는 할머니 집의 물건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대청소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이제 집을 정리한 것일까? 아니면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일까?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리면 아파트 입구에서 언제나 엄마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없어서 좋고, 더 이상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 좋기도 하면서 할머니의 생사가 유독 마음이 쓰인다. 혹시 고독사를 당한 것은 아닐까?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다가 창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입이 살짝 헤벌레 벌려있었다. 머리는 하얗고, 얼굴에 핏기는 없고, 뼈만 앙상하다. 이빨은 다 빠져 주름마저 자글 자글 하고, 볼이 쏙 들어갔다. 엄마의 얼굴에는 오랜 병이 가져온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이 속상해 엄마에게 짜증 난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엄마 입 다물어"

엄마는 내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바로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다리에 기브를 한 채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생활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돼간다. 다리가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조금은 더 건강할 수 있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머리로 피가 몰려서 화난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러니까 누가 내려오라고 그랬어? 걷지도 못하면서 뭐 하러 내려와서 이 사단을 만들어 놔 진짜 "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다가, 집을 비운 내 잘못으로 돌리다가, 이제는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엄마 이 수건 내일 개 알았지"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내가 말했다. 반듯하게 제대로 개지 못하는 수건일망정 수건을 개는 그 시간만큼은 엄마에게 작은 생기라도 불어넣어주고 싶다. 엄마의 마지막이 고독하지 않게 지켜드리고 싶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임원희는 아파트 비번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물어봤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쉽게 아파트 비번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아파트 비번을 모두 알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는 형제도 있다. 식구들 이외에도 몇 사람 문자를 지우지만 않았다면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엄마가 살아 계시는 동안의 이야기이다.

노인일수록 혼자 살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혼자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안부를 물어줄 친구라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안부를 물어올 수 있는 세 명의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있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나와는 너무 먼 거리에 사는 친구들이다. 내게 문제가 생겨도 당장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을 사귀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고독사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닥칠 나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참을 수 없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