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나에게는 두부류의 친구가 있었다. 한 부류는 겉멋만 잔뜩 든 압구정 날라리 같은 친구들, 그리고 한 부류는 범생이 친구다.
날라리라고 불리던 친구들은 그냥 발랑 까지고 싶어 하는 풋내기 소녀들이었다. 본명이 있어도 백장미, 채송화라는 예명으로 불러주기를 바랬다. 그때 나도 예명이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진달래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진이라고 하기에는 겉멋만 잔뜩 들었지 착하고, 순진했던 소녀들이다.
그와 반대로 나에게는 숙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착하고, 예쁘고 바른 도덕 선생 같은 친구였고, 선생님들에게 언제나 사랑받는 소녀였다. 1학년 때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후 바로 친구가 되었고 서로 다른 반이 되어도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내가 날라리가 되고픈 백장미 채송화와 어울리게 되면서 숙희와 우정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숙희는 나에게 그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당부했고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숙희와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것인지, 백장미 채송화와 함께 거리를 싸돌아다니며 놀 것인지 말이다.
나는 숙희라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숙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수다를 떨다 내린 시장 골목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몇 정거 장전에서 내려 함께 만화를 봤다. 둘이 집으로 걸어가는 길 따라오는 남학생의 데이트 신청을 정중히 거절하던 일도 있었다.
훗날 숙희는 나에게 너를 나쁜 친구들에게서 바른길로 인도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바르기만 했던 숙희도 여고 졸업 후 늦바람이 들었다. 미용계에 발을 담더니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근무도 했었는데 절대 화장이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은 다니지 않을 것 같던 아이가 화장을 하고, 춤을 추러 다녔다.
여고시절 단짝친구 숙희는 내가 한국에 없는 어느 해 스물다섯도(그때는 그 나이에 여러명 시집을 갔다) 안된 어린 나이에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해서 나를 영영 떠나 버렸다.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한국에 돌아와 집전화 번호로 숙희를 찾아보았지만 찾을수 없었다. 신랑을 따라 지방(광주)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보고 싶은 내 여고시절 단짝 친구 숙희가 정말 그립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