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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를 위함이라

북경성경연구원

by 약산진달래


"중국 공안들이 한국인에게 장소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당장 유학생들 모임 장소가 필요한데 마땅한 곳이 없을까?"

중국에서 외국인 모임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모든 모임은 공안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고,
비밀리에 모인다고 해도, 한국인이 장소를 빌릴 때는 몇 배의 임대료를 요구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고도 없이 장소 사용을 금지하는 일방적인 통보도 흔했다.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신앙 공동체

김 선교사님은 내가 중국에 들어올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이었다.
같은 선교단체 소속이었고,
중국에서 조선족, 한족, 북한 사역까지 다양한 영역에 손을 뻗고 계셨다.

그때, 중국은 이제 막 문호를 개방한 상태였다.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었고,
젊은이들과 목회자들이 선교사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 거주하며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유학생들을 위한 선교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


북경성경연구원의 탄생

북경에는 중국 내 일류 대학이 집중되어 있었다.
북경대, 인민대, 수도사범대, 항공대, 어언대 등.
이곳에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포진해 있었다.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한인교회도 세 곳이나 있었다.
그중 21세기 교회는 중국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은 유일한 교회였다.
주재원뿐만 아니라, 유학생들도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렇게 3개의 한인교회가 연합하여,
한국 유학생들의 신앙과 선교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북경성경연구원’을 설립했다.

이 연구원의 제안자는 바로 김 선교사님이었다.
북경성경연구원은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성경 공부

제자훈련

중국 내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들의 강의

등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갑작스러운 장소 사용 금지

처음에는 유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학원로의 한 호텔 연회장을 빌려
토요일만 사용하는 방식으로 연구원 모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장소를 빌려줄 수 없다"**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또다시 장소가 필요해졌다.


하나님의 예비하심: 유아원의 공간 제공

마침 내가 근무하던 북경 유아원이 야윈춘에 있었다.
그때, 교회가 장소를 옮기면서 유아원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아원은 주재원과 유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우타코 부근의 중국인 유아원의 교실을 빌려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북경성경연구원은 한국 유아원이 사용하는 교실에서 모임을 이어가게 되었다.

은밀한 신앙 공동체의 공간

중국인 유치원은 넓은 부지를 갖고 있었고,
아이들이 등원하지 않는 주말 시간대에는
기도 소리나 찬송 소리가 외부에 들릴 위험이 없었다.

토요일 아침이면,
학생들이 오기 전 유치원의 문을 열었고,
모든 일정이 끝나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를 한 후, 문을 닫았다.


한국 유아원의 성장과 신앙 공동체의 지속

당시, 북경에는 자녀를 동반한 한국인들이 많았다.
한국 유아원은 점차 확장되었고,
한국 대사관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한국 유아원은 ‘한국 병설유치원’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를 통해, 유치원 건물도 공식적으로 임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북경성경연구원도 중국의 감시를 피해
계속해서 유학생들의 성경 공부와 선교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진 신앙 공동체

북경성경연구원은 2기부터 시작하여,
내가 중국을 떠나기 전까지 6기 연구원생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는 언제든 단속을 당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전한 공간을 허락하셨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예비하셨다.

내가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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