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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전거

by 약산진달래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1-2)



90년대 후반, 중국 거리의 ‘빵차’와 자전거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택시는 노란색의 ‘미엔바오(面包车)’였다. 빵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이 차를 ‘빵차’라고 불렀다.

빵차는 일반 택시에 비해 요금이 저렴했고, 여러 명이 함께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이동할 때면 덜컹거리는 승차감과 싼 휘발유에서 나오는 매연 냄새가 차 안까지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버스보다 훨씬 편리했기 때문에 나는 자주 빵차를 이용했다. 덜컹거리는 승차감도, 매연 냄새도 이제는 기억 속에 희미해졌지만, 그 시절 북경의 거리에서 ‘빵차’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풍경이었다.


북경에서 꼭 필요한 운송수단, 자전거

빵차와 함께, 북경에서 자전거는 꼭 필요한 운송수단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어설프게나마 자전거를 배워 두었기에, 나도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큰맘 먹고 생애 처음으로 새 자전거를 샀다. 작고, 아담하고, 예쁜 자전거였다.


내가 살던 숙소는 알리좡, 5층짜리 연립주택 같은 아파트 단지였다. 그곳에서 우다코까지 자전거로 20~30분 정도 걸렸다. 우다코에는 한국 음식점이 있었고, 학원가이다 보니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우다코를 자주 다니다 보니 빵차보다도 자전거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자전거 도둑이 많았다. 열쇠를 채워도 새 자전거는 아파트 입구에 세워 둘 수 없었고, 결국 3층까지 들고 올라가 집 안에 보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귀찮을 때면 계단에 세워 두었다.

밤사이 누가 훔쳐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몇 번이고 확인했다. 자전거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누리는 자유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순간만큼은, 오직 나로 있을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북경의 거리에는 자전거 물결이 끝없이 이어졌다.

러시아워가 아닌 시간에도 자전거 도로는 결코 한산하지 않았다. 중국 여성들은 보통 날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전거를 많이 타서라고 했다. 치마를 입고도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타며 거리를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고 없는 사고

어느 날, 우다코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원가 사거리를 지나 알리좡으로 넘어오는 내리막길. 그때, 뒤에서 달려오던 자전거가 나를 지나치려 했다.

순간적으로 피하지 못했고, 나는 그대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나려는 순간, 팔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를 친 사람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괜찮을 거예요." 손짓을 하며 그를 보냈다.

하지만, 아픈 팔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팔을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팔에 금이 가다

진 선생님. 바로 옆동에 살던, 같은 유아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었다. 급하게 그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팔이 심상치 않았다.

진 선생님의 남편, 장 선생님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결과는, 팔에 금이 갔다. 결국, 4주 동안 기브스를 해야만 했다.


그날, 자전거도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그날의 사고로 자전거도 고장이 났다. 아파트 앞 노점에는 자전거를 수리해 주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때 묻은 군용 점퍼를 입고, 언제나 인상 좋은 미소를 띠고 계셨다.

그는 내 자전거의 바퀴를 다시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고쳐 주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자전거를 집 안으로 들여놓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자전거가 사라졌다.

도둑이 든 것이다.


자전거를 통해 배운 것들

새 자전거는, 보관을 잘해도 훔쳐갔고, 보관을 잘 못해도 결국 사라졌다. 아무리 열쇠를 단단히 채워도, 계단에 세워 둔 것이 잘못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전거 수리점에서 자전거 도둑의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뒤로, 나는 새 자전거를 사지 않았다. 대신,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은 고물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바퀴만 잘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자전거 걱정 없이 북경의 거리를 달렸다. 그리고, 그 후로 자전거를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아픔이 남긴 소중한 인연

팔이 다친 것을 알고, 우다코에 살던 친구는 나를 자주 찾아왔다. 그렇게, 그날의 사고를 계기로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벗을 얻게 되었다.

팔이 부러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새 자전거를 도둑맞았지만, 그 덕분에 고물 자전거와 자유를 얻었다.

북경에서의 자전거와 함께한 시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북경에서 나는, 자전거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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