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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 밤 산책

by 약산진달래

언제나 내 뜻이 먼저인 삶을 살아간다.

나를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는 일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나를 보자마자 친구의 어머니는 말했다.

"아까워서 어쩌까이."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누워 계신 어머니,

침대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는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어나 앉으셨다.

"왔냐? 엄마랑 같이 왔냐?"

해가 갈수록 어르신들의 얼굴은 점점 더 깊게 주름이 패이고,

몸은 외소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젊고 바지런하셨던 순*이 엄마도

이제는 몸이 느려지시고, 마음도 한층 더 여려지셨다.

침대 아래 바닥에 누워 계신 친구의 어머니를 보며

내 마음도 애잔해졌다.

오랜만에 시골에서 친구를 만났다.

서로 시간을 맞춰 고향에서 친구를 이렇게 만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친구는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하셨다가 퇴원하는 날이라,

그를 돕기 위해 시골에 내려온 것이었다.

내가 시골에 자주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꼭 오라며 연락을 주었다.

삼월 초, 시골의 한낮은 따뜻한 봄볕이 가득했다.

논에 뿌려둔 유채꽃과 보리는 하루가 다르게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여전히 겨울의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어두운 밤이 금방 올 것을 알기에

나는 미리 엄마의 저녁을 챙겨 드렸다.

그리고 친구에게 산책을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친구는 아직 부모님의 식사를 차려드리지 못해,

어둑어둑해진 후에야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나를 따라 산책을 나선 강아지를 돌려보내고,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깔린 신작로를 홀로 걸었다.

그때,

뒷덜미를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한 오싹한 기운이 감돌았다.

역시 시골 밤길을 혼자 걷기엔 무섭구나,

생각하며 친구 집에 도착했다.

친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동네 마실을 나섰다.

시골의 골목을 걸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밤하늘의 별이 이렇게 많았어?"

"밤하늘이 이렇게 가까웠어?"

"집들이 너무 예쁘다, 골목이 참 정겹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겨울이면 쥐불놀이를 했고,

어릴 때는 앞산이 정말 높아 보였는데,

지금 보니 이렇게 낮았나 싶었다.

함께 놀던 동네 아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걷던 중,

갑자기 친구가 뜬금없이 말했다.

"나는 너처럼 못 살아."

"나처럼?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우리 엄마가 나만 보면 너 이야기 하면서, 너처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셔."

"그래서 내가 말했어. 난 너처럼 못한다고."

친구는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으시고,

이제는 어머니마저 치매로 인해 기억을 깜빡깜빡 하셔서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마음을 다지는 듯,

친구는 다시 말했다.

"나는 너처럼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더라도 못 모시고 살아."

나는 그런 친구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두 분이 그냥 건강하게, 더 나빠지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다."

친구의 말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지만 정신이 또렷하셨고,

어머니는 몸은 괜찮지만 치매로 인해 기억이 흐릿했다.

그래도 두 분이 함께 계시니,

서로 의지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살고 계셨다.

논길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친구가 앞산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기 불빛 봤어?"

자세히 보니,

앞산의 무덤 자리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반딧불이가 저렇게 반짝일 리는 없을 텐데."

불빛이 반짝일 리 없는 곳에서 빛이 나니,

우리는 순간 무서워졌다.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던 산책은

관서리에서 시작해 관중리와 관산리를 돌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도 내 삶을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수님께 의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지금의 삶이다.

앞으로도 걸어가야 할 길 역시

내 뜻대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나는 기대한다.

나를 통해 잃어버린 단 한 명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그리고 천국에서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시는 주님을.

나는 내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온전히 맡기며,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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