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믿음이 견고하고 단단한 바위 같은 믿음인 줄 알았다.
절대 흔들릴 리 없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내 믿음은 작은 바람에도 꺼져버리는 촛불과 같았다.
북경 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2년 계약으로 마쳤다.
사실, 왜 그토록 2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저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제나 방랑기가 가득했던 나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아원 계약이 끝난 후,
언어 연수를 정식으로 마치고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유아원에서 1년을 더 섬겼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때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할 생각은 없었다.
내 계획은 다시 정비한 후 대만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대만 어린이전도협회에서 훈련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내 믿음의 절정기는 중국에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순간부터,
내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더 화려해졌고,
사람들은 빛이 났다.
나와 함께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들은
이미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반듯한 직장에 다니고,
멋진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삶을 즐기며 빛나는 그들 속에서
나는 회색빛 옷을 입은 채 미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셨고,
나 또한, 마치 우주에 홀로 떨어진 듯
한국 생활이 낯설고 위화감이 들었다.
4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문화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유롭게 살던 나는
다시 정돈된 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몸에 가시를 품고 살았다.
겉으로는 조용히 숨기고 있다가,
누군가 나에게 시비를 걸 듯 하면
그 가시를 살며시 꺼내 찌르곤 했다.
나는 한국에서 재정비한 후,
대만으로 나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다.
중국에서의 삶은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시간이었다.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시간이었고,
세상의 유혹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세상은 나를 유혹했고,
나는 나 자신을 비교하며,
점점 좌절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놓지 않으셨다.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셨고,
내가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강권적으로 나를 믿음 안으로 밀어 넣으셨다.
나는 대만이나 다른 선교지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국에서 나를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잠시 세상에 흔들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놓지 않으셨고,
나를 사용해 주셨다.
25년 전, 나는 대만으로 가기를 꿈꾸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은 달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대만을 향한 빚진 마음이 있었기에
나는 여전히 대만에서 사역하는 친구를 돕고 있다.
나는 교회 주보에 넣을 이미지를 만들고,
광고 전단지를 디자인하며,
대만 중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준비하고,
성경 이야기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비록 대만으로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대만을 돕는 자로 사용하고 계셨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믿음으로 붙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이지 않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도
우리를 사용하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