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가고파
초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예전에도 7~9세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나이대 학생들은 상상력으로 말한다. 분명히 영어 과외 시간인데 불쑥불쑥 다른 얘기를 꺼낸다. 나는 "그렇구나~" 적당히 맞장구치면서 은근히 다시 영어로 주의 집중시키는 능력이 늘었다. 요즘 가르치는 초2 학생은 날마다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서 같이 하자고 한다.
초2 학생은 나한테 그림 선물을 자주 준다. 거리낌 없이 아무거나 그려내는 모습이 신기하다. 색깔도 한 번에 정한다.
발표할 일기를 2차 수정하면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래도'를 '애리도'라고 잘못 썼다. '애리도 되는 것인가...'
며칠 전엔 친구와 카페에서 카페인 섭취하고 나왔다. 잠도 잘 못 자서 가슴이 벌렁벌렁한데 갑자기 나 자신한테 힘주고 싶어서 소리쳤다. "애리야 힘내라!!!!!"
같은 날,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초등학생에게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응원의 말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다. 회사 AI 시스템으로 학생에게 맞는 질문을 알려줘서 사용했을 뿐이었는데, 학생이 술술 대답해서 놀라웠다. 스스로를 응원하는 힘과 스스로에게 응원받을 힘을 이미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어떤 날은 과외 전에 기분 좋은 망상에 행복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과외가 끝난 후에는 바로 기분 나쁜 망상에 빠졌다.
오늘도 기분 나쁜 망상에 빠졌다. 망상은 나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가장 괴로운 곳으로 내몬다. 그런데 별 생각도 의심도 없이 응원의 말을 내뱉으면 마음이 그나마 가뿐해진다. 배부른 사람이 되었다.
어젠 AI 시스템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랬더니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아주 공감할 만한 대답을 하는 거다.
'가만히 있기'
'좋은 생각 하기'
'마음 편하게 하기'
나는 명상을 잘 못 한다. 나는 내가 명상을 잘할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스럽다. 위 대답을 한 초5 학생이 나보다 명상을 더 잘할 것 같다.
방금 명학과 밤 산책을 했다. 명학은 이런저런 고민을 잘 들어줬다. 마음이 무거운 가운데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엔 정자에 못 들어간다. 정자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모기가 '끝까지 한 번 해보자'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모기도 스스로를 응원한다.
명학이 책으로 나올 일기집을 모두 읽어주고 피드백도 해줬다. 아직 편집 과정이 남았기에 완성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2021년 5월부터 9월까지의 내 일기를 다 읽어준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홍제천에 폭포를 찾으러 갔다. 지도에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폭포라고 나오는데 폭포가 없었다. 큰 바위에 정자세로 앉아 눈을 감은 중년의 남성만 있었다. 우리가 폭포 폭포 거렸더니 중년의 남성이 눈을 떴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폭포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폭포?"
"네, 인공 폭포요."
"인공 폭포요?"
중년의 남성은 일어서서 설명할 자세를 잡았다. 어깨를 활짝 펴고 양팔을 직각으로 만들어 손을 올렸다. 폭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자세히 설명해주는 모습이 가이드만큼 전문적이었다. 바위 위에 선 가이드가 인공 폭포를 설명할 때 던지는 시선은 광야나 협곡 속에서 경치를 돌아보는 사람의 것처럼 넓고 높았다.
이제 폭포의 일기를 읊기 시작할 차례였다.
"이 폭포는 오전 11시쯤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후 6시쯤 끝납니다. 주말에는 조금 더 오래 하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중년의 남성은 다시 큰 바위 위에 아까처럼 자리를 잡아 정자세로 앉았다.
"색종이 아저씨 닮은 것 같아."
명학은 눈이 안 좋아 잘 못 봤다고 했다. 나는 두어 번 정도 더 말했다. 색종이 아저씨 닮은 것 같아.
타인의 마음이 두렵다. 두려워서 무서운 망상에 빠지곤 한다. 명학이 오늘 타인의 마음을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도닥여주려고 했다. 고마웠다. 위로를 잘하는 명학이는 얼마나 위로받고 싶었으면 위로를 잘하게 되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