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비어 가는 시대, 마음은 어디에 앉는가

사라지는 식탁과 남겨진 마음들에 대하여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남아 있는 건 식탁이 아니라 의자였다

요즘은 식탁보다 의자가 먼저 남는다.
네 자리가 있어도 둘만 앉고,
둘이 살아도 혼자 먹는 날이 더 많다.
식탁은 여전히 집 한가운데 있지만
그 식탁을 채우던 시간은
조용히 증발해 버렸다.


식탁은 그대로인데
식탁의 ‘자리’만 사라지는 시대다.


함께 먹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식탁은 쉬어진다

통계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누구와 먹느냐가 달라지면
어떻게 먹느냐도 바뀐다는 것을.


1인 가구가 늘고,
식구가 줄고,
집에 있는 시간조차 서로 맞지 않으면서
식탁은 천천히 ‘작업대’가 되었다.


노트북을 올려두고 일을 하거나
그 위에 택배를 잠시 올려두거나
간단한 끼니를 혼자 대충 때우는 자리.


식탁은 남았지만
식탁다운 순간은 줄어들었다.


반찬통을 열 때마다 스치는 감정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예전엔 SNS에서 보던 예쁜 식탁을
한 번쯤 따라 해 보려고 애쓴 적이 있다.
접시 각도도 맞춰보고,
베란다에서 들여온 조화도 옆에 두고.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 배고파서 반찬통 뚜껑을 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이거 사진 찍을 여력도 없네."


따끈한 밥보다
지쳐 있는 나를 먼저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때 엄마의 식탁이 떠올랐다.
김치통 그대로 올려놓고
뚝배기 하나 가운데 두고
말없이 먹던 그 조용한 시간들.


그 식탁에는
꾸밈도 없었고,
각도도 없었고,
좋아요 숫자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다.

집밥.jpg

(이미지출처 : pixabay)


화면 속 식탁은 더 화려해지고, 현실의 식탁은 더 조용해진다

언제부턴가
예쁜 식탁 사진이 더 이상 부럽지 않다.
한때는 멋져 보이던 그 장면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조금 낯설다.


왜냐하면
현실의 식탁이 어떤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마트 반찬을 통째로 올려놓고,
엄마표 김치를 그대로 집어먹고,
먹다 남은 반찬이 냉장고에서 굳어가며
결국 "아... 미안" 하고 버리게 되는 날들이 훨씬 많다.


예쁜 식탁은 잠시지만
현실의 식탁은 반복된다.


그래서
내 식탁을 괜히 누군가의 화려한 장면과 비교하는 일이
요즘은 더 피곤하다.


식탁은 원래 '보이는 자리'가 아니었다

식탁은 원래
빛을 쬐는 무대가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하는 자리였다.


여럿이 둘러앉던 시간을 잃어버린 시대라도
식탁의 의미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식탁은
"누구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앉는 자리인가"와
늘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우리가 식탁을 잃어가는 동안
정작 잃은 것은
식탁 위의 그릇이 아니라
식탁에서 흘러가던 미묘한 온기들인지 모른다.



Epilogue_식탁을 지키는 작은 의식

요즘 나는
큰일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아주 작은 의식만은 지키려 한다.


하루 한 끼라도
휴대폰을 멀리 두고 먹는 것.
반찬통 그대로 올려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의자가 비어있으면
내 마음이라도 빈자리에 앉히는 것.
가끔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밥 같이 먹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식탁은 결국
그 위에 놓인 음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는 마음으로 완성된다는 걸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의자가 비어 있는 시대라도
마음만 앉아 있다면
식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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