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자격

우리는 왜 '완벽한 정화'를 기대하다 실패하는가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unsplash)


요즘 나는 사람을 이해할수록 조금씩 슬퍼진다.


분노보다 먼저 오는 감정은 실망도 냉소도 아니다.

그저 설명할 필요 없는, 조용한 슬픔이다.


인간이 얼마나 자주 자기 이익을 위해 눈을 돌리고,

얼마나 쉽게 폭력에 이유를 붙이며,

얼마나 능숙하게 비겁함을 합리화하는지 알게 될수록

화낼 힘부터 빠져나간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더 나아지면 세상도 함께 나아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그 믿음을 거의 뒷받침하지 않는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탐욕은 사라지지 않고, 이기심은 교양으로 교정되지 않으며,

폭력은 어떤 명분을 만나든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인류가 택한 방식은 인간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전제로 한 장치였다.


법은 선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제도는 도덕을 신뢰하지 않는다.

권력 분산은 인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 사실이 한동안 나는 불편했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못 믿어야 하나 싶었고,

왜 최선을 기대하지 않고 차선을 기준으로 설계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인간 혐오가 아니라 인간 이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언제든 나빠질 수 있다는 전제,

그래서 누군가의 선의에 모든 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

그건 포기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겸손일지도 모른다.


슬픈 건 우리가 여전히 '완벽한 정화'를

어디선가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강한 처벌,

더 선한 지도자,

더 순수한 집단.


위기가 올 때마다 늘 가장 먼저 호출되던 말들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현실이 된 순간마다

역사는 늘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더 많은 폭력,

더 빠른 타락,

더 깊은 상처.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인간의 문제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것이 보상받지 않게 만드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탐욕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비겁함이 지혜로 포장되지 않으며,

폭력이 영웅담이 되지 않는 곳.


그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윤리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밝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무거워진다.


그래도 이 무게를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게 됐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것보다

"슬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직은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픔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느린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인간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다.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조금 불편하게,

조금 느리게,

조금 슬픈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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