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뜨는 강박

먹는 걸 기록해 온 시간에 대하여

by 깊고푸른밤


기록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먹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적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새 5년도 넘은 것 같다.


처음엔 의미가 없었다.
대단한 기록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그날 먹은 걸 그저 끄적끄적 남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록이 비어 있는 날이 생기면,
괜히 마음이 걸렸다.


그날 뭘 먹었더라? 가만히 떠올려보고,

잘 생각나지 않으면 식구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괜히.


지금은 그 기록이 일기처럼 돼버렸다.


"그날 뭐 했지?" 싶을 때,
사진보다 먼저 식사 기록을 연다.


기분이나 생각은 흐릿해도
무슨 밥을 먹었는지는 이상하게 단서가 된다.


아, 이때였구나.

이쯤 되면
집착이라 부르기엔 가볍고,

취미라 부르기엔 너무 오래된
'습관' 하나쯤은 된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병적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건
붙잡는 게 아니라,

물에 떠 있는 상태에 가깝다.


가라앉지도 않고, 나를 끌어당기지도 않고,
그냥 옆에서 같이 흘러간다.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솔직하다.

말은 고를 수 있어도, 식사는 잘 숨겨지지 않는다.


바쁜 날엔
급하게 밀어 넣던 김밥 한 줄로 때우고,
기운 없는 날엔
괜히 국밥의 온도를 찾는다.


혼자 있는 날엔
말수만큼이나 식사가 간단해진다.


그래서 음식 기록은
'취향의 기록' 같지만, 사실은 '상태의 기록'에 가깝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살던 이 시절,
평범한 한국 남자 하나는 이런 것들을 먹으며 하루를 버텼겠구나.


라면도 있었고,
배달도 많았고,
혼자 먹는 날도 점점 늘어났고, 국물에 의지하던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이걸 책으로 남기고 싶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도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고, 의미를 부여해주지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더 좋다.


대단해지려는 순간,
이 기록은 바로 재미없어질 테니까.


나는 여전히 먹는 걸 좋아하고,
그래서 여전히 적는다.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먹어왔고,
살아왔고,
그걸 잊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도 그런 평범한 하루 하나를,
식사 한 끼와 함께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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