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같은 깊이로 맛을 보지는 않는다

- 취향이라는 말 뒤에 숨은 것들에 대하여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구글)


맛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지."
그 말은 늘 편리하게 모든 논의를 끝낸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그럴까.
정말 맛은 그렇게까지 제멋대로일까.


우리는 음식을 씹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혀가 먼저 알고, 몸이 먼저 판단한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좋다’ 혹은 ‘아니다’가 결정된다.
그 감각은 취향 이전의 영역에 가깝다.


물론 그 감각은 뇌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것을 뜨겁다고 느끼는 것처럼,
균형 잡힌 맛을 느끼는 일 역시 감각의 문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맛없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의문이 남는다.
정말 맛이 없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그 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까.



'맛있다'와 '좋아한다'는 말의 혼동


맛있다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은 다르다.
이 구분은 생각보다 자주 무시된다.


잘 만든 음식 앞에서
"나는 이 계열을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하는 건 정직하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하지만
"이건 맛이 없다"라고 단정하는 순간,
그 말은 감각의 평가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가 된다.


완성도와 기호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모든 음악을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조율이 맞지 않는 연주와 잘 연주된 곡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은 입맛을 바꾸지 않는다


많이 먹어본다고 해서 입맛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대신 해석하는 능력이 늘어난다.


단맛의 질을 구분하고
쓴맛의 깊이를 견디게 되고
자극이 없는 음식에서도 구조를 느끼게 된다.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즉각적인 보상이 없으면
"심심하다"거나 "맛없다"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어휘의 부족에 가깝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빠져 있다.


기다림이다.


기다림이 사라진 혀는
자극에만 반응한다.
그건 미각이 아니라
반사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입맛’이라는 말을 경계한다


입맛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것을 덮어준다.


정말로 존중받아야 할 다양성과,
이해하려는 노력을 생략한 채
판단을 유예해 버리는 태도까지
같은 이름으로 묶어버린다.


그 차이는 언제나 같지 않다.
어떤 것은 이해의 결과이고,
어떤 것은 단지 회피의 결과다.


차이라고 불리지만
그중 일부는
개성이 아니라
게으름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맛없다"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의 평가를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그 말속에는 종종
음식에 대한 판단보다
자기 상태에 대한 무관심이
더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맛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맛이란
그 음식을 이해할 준비가 된 감각이
순간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그 준비에는
시간도, 경험도, 인내도 포함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즉시 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끝내 오지 않는다.


그 차이를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로 정리하는 건
너무 쉽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다른 입맛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깊이로 맛을 보지는 않는다.



Epilogue


이 글은 누군가의 입맛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너무 쉽게 쓰이는 말 하나를
잠시 멈춰 세워 보고 싶었을 뿐이다.


맛을 안다는 건
대단한 자격이 아니다.


서두르지 않았고,
몇 번쯤은
끝까지 씹어보았다는
흔적에 가깝다.


음식도, 삶도
대개는
그 정도의 속도에서
비로소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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