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가 일 안 할 때

- 돌려받는 게 아니라 굳어지는 것

by 깊고푸른밤

(이미지출처 : 위키백과)


카르마를 믿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믿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 설명이 쉬워지니까.
왜 저 사람은 잘되고,
왜 어떤 일은 꼭 나한테만 생기는지.


살다 보면
착하게 산 사람보다
요령 좋은 사람이 먼저 도착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줄 서서 기다린 사람은 뒤에 남고,
새치기한 사람은 이미 계산을 끝낸다.


그때마다
"나중에 다 돌려받을 거야"라는 말이 떠오른다.
카르마라는 단어는
그 말에 꽤 그럴듯한 표정을 붙여준다.


하지만 이상했다.
'나중'이 너무 자주 오지 않았다.


번쩍이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착하게 산 사람은 여전히 월급 통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산은 없었고,
미납 안내문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카르마를 믿지 않게 됐다.
카르마가 일해줄 거라는 기대를 접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그 대신 남은 건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고 나면
세상이 나를 벌하지는 않지만,
내가 나를 데리고 가는 방향은 분명해진다는 느낌.


거짓말을 한 날은
그날 하루가 아니라
다음 대답이 조금 더 쉬워지고,
한 번 외면한 장면은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넘기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학습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 대신
이런 쪽이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이 선택을 계속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카르마가 있다면
아마 벌이나 보상보다는
그 질문 쪽에 가까울 것이다.


돌려받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굳어지는 것.


그게 생각보다 무섭고,
그래서 조금 조심하게 된다.


이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 얼굴로 오래 살 자신은 없어서.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덜 미워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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