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서

by 깊고푸른밤

오래간만에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행동]

스탠퍼드에서 신경과학을 하는 로버트 사폴스키가 썼다.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두껍고 묵직한데, 이상하게 손을 놓기가 어려웠다.


아마 질문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조건대로 반응하는 걸까.


그 질문을 붙들고 있는데,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환경이 그렇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맞는 말인데,

들을 때마다

조금씩 조여들었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그 말들이 설명이 아니었다는 걸.

'방어'였다는 걸.


그리고 그 방어가 그렇게 빠르게 나온다는 건,

오래 연습한 거라는 걸.

어떤 환경이 그걸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것 같았다.


며칠 뒤였다.

누군가 정치 얘기를 꺼냈다.

나와 다른 말이었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틀렸다는 확신이 먼저 왔다.


그리고 나는 빨라졌다.


말투가 달라졌고,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미 다음 문장이 올라와 있었다.


나중에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 빠름이 어디서 온 건지.


십 년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어떤 시간이

그 반응을 만들어온 건지.


의지로 고른 게 아니라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직원이 같은 말을 반복할 때,

나는 그걸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날카로워질 때는

내가 옳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설명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판단은 여전히 빠르다.


상대가 틀렸다는 확신이 올라오는 속도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묻는 속도보다

항상 먼저다.


아직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간다.


책을 덮었다.


이해한 것 같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예전처럼 반응했다.


잊은 게 아니라,

반응이 먼저 나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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