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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한 오후 Oct 18. 2023

과민성대장증후군

<세요켄(精陽軒)> 1914년 문 열고 2022년 문 닫은 중국 식당

부잣집 도련님이 우리 회사는 웬 일로?

H를 다시 만난 건 연남동 유명 이자카야였다. 잘 생긴 외모는 그대로였다. 를 처음 만난 건 회사 신입사원 면접장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큐슈 쪽에서 어학 연수를 마치고 첫 직장으로 문을 두드린 곳이 우리 회사였다. 면접하기 전 이력서를 훏어보는 순간 불합격을 예감했다.


다른 면접관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 회사와 무관한 전공에 그것도 대학을 갓 졸업한 친구를 선뜻 채용하기는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문을 똑똑 두드리고 번듯하게 생긴 한 청년이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큰 키에 하얀 얼굴을 가진 부잣집 도련님 한 명이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면접을 시작했다. 전공이 전혀 무관하다는 것만 빼면 크게 흠 잡을 데가 없는 지원자였다.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가공되지 않고 솔직한 답변으로 면접위원들의 적잖은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더 반가웠다.    

 

불합격에서 합격으로 운명이 변하다 

그가 나간 뒤 상당한 토론이 이뤄졌다. 그래도 직무 관련 경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주류였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보자고 했다.


다소 추상적인 얘기였지만 성장 가능성 측면을 보면 충분히 신입사원으로 뽑을 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극도의 전문적인 직무가 아니라면 시간을 두고 인재를 길러내는 것도 조직의 임무고 소통 능력을 가지고 조직에 쉽게 융화될 수 있는 친구라면 기대해봐도 된다라고 주장했다.     


내 주장의 설득력이 있었던지 H는 우여곡절 끝에 입사하게 됐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일본어 실력이 뛰어났고 사람들하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했다.


신입사원다운 패기도 있어서 짧은 시간 내에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지내게 됐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아버지 영향 탓인지 조직의 생리에 관한 이해도도 높았다.


분위기 파악도 잘 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말이 약간 빠르고 많은 것을 제외하면 딱히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친구였다.


너무나 평범하게 보였던 아오야마의 100년 중국집

몇 달이 지났고 대견하게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수요일 점심 약속 있어요?”     


수요일이 됐고 회사서 가까운 아오야마(靑山) 쪽으로 넘어갔다. 세요켄(精陽軒)은 1914년 개업한 중국 식당이다. 도쿄 5대 사립 명문인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 대학 근처에 있다.


왠지 대학을 갓 졸업한 H와 이미지가 잘 맞는 식당 같아서 굳이 아오야마로 건너가 세요켄으로 오게 된 것이다.


우리로 치면 강남 한 복판에 있는 유명 사랍대인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 대학. 캠퍼스가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대학 근처 식당은 역시나 저렴하다     

일단 외관은 아주 흔한 동네의 중국집이다. 100년 식당의 무게와 포스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집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식당이다.


 내부는 평균적인 중국집보다는 조금은 더 깔끔하고 단정했다. 학교 앞이다 보니 학생들의 젊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다. 옛날 모습 사진이 있는 걸로 보아서 원형 그대로 있는 집은 아닌 것 같다.   


   

옛날 창업 당시 원형 그대로는 아닌 듯 하다.


지극히 평범한 내부. 그래도 역사를 말해주는 사진이 벽면 곳곳에 부착돼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 음식은 저렴하고 배부른 음식

중국 음식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지위가 비슷하다. 저렴하고 배부른 음식이다. 선택의 폭이 넓다. 짜장면이 중국에서 유래한 음식이지만 한국의 국민 음식이 됐고 라멘이 중국에서 시작한 음식이지만 일본의 국민 음식이 된 것도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중국 요리가 큰 쟁반에 푸짐하게 나오는 스타일이라면 일본의 중국 요리는 작은 접시에 조금씩 내온다. 나에게는 적은 양이지만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일본 스타일이 좋다.     


대학 근처라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평범하고도 익숙한 맛

가장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탕면과 마파두부와 교자를 주문했다. 나는 탕면을 먹었고 H는 마파두부를 먹었다. 감칠맛이 강한 닭육수 베이스의 탕면은 시원하면서도 짜지 않다.


완전히 일반인의 입맛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대중성과도 딱히 영합하지 않은 맛이라 좋았다. 고추기름 좀 치고 고춧가루 좀 올리면 이런 해장국 따로 없다. 콧물 같은 식감의 전분이 들어간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탕면에는 아주 가볍게 전분이 풀어져 있다. 전분을 풀면 뜨거움이 오래 간다. 겨울에 먹기 정말 좋지 싶다.     


 

한국 사람이라면 고춧가루를 풀어야한다.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게 매력

아주 짧은 시간에 사람의 입맛을 매료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대중적인 음식일수록 조미료 많이 쓰면서 짜고 달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나름의 자존심으로 100년을 버텨 온 집답게 대중적인 것에서는 살짝은 비켜 간 느낌이 있다. 교자는 별 다르게 개성이 없긴 했다.      


“마파두부는 어때?”     


H에게 물었다. 정신없이 마파두부를 먹고 있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 먹고 나더니 자기가 먹은 마파두부 중 가장 훌륭했다고 했다. 분위기와 상황이 세요켄의 마파두부를 더 빛나게 했을 것이다.     

 

교자랑 함께 먹을 맥주도 주문했다. 점심 한정으로 100엔이라니. 맛에 놀라고 가격에도 놀랐다. 기분이 좋아졌다. 먹으면 먹을수록 만족감이 높아진다. 가벼운 학생들의 주머니를 고려한 듯 다양하고 저렴한 세트들이 많다.


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음식을 나눠 먹기에 제격인 집이다. 게다가 이 집은 친절하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치킨에 맥주이지만 일본에서는 교자에 맥주다.

잘 먹어 놓고 혼자 도망가는 H

만족감 있는 점심을 먹고 아오야마와 오모테산도를 잠시 걸을 생각이었다. H에게 그런 얘기를 하려는 순간 식은 땀을 흘리는 그를 발견했다.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뭔 일이 있나 싶었다. 채했나.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 별 일 없다고만 했다. 갑자기 이 녀석이 속도를 내며 잰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간다. 내가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저만큼 앞서 간다.     


“같이 좀 가자!”     


짜증이 나서 H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실컷 기분 좋게 점심 사줬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 치는 모습을 보고 누가 좋아하겠는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실망감마저 들었다. 저렇게 예의가 없는 친구였나.     


눈부신 계절의 아오야마 대학 캠퍼스. 청산(靑山)이라는 말 그대로 푸르고 또 푸르다.


H의 지병이 밝혀졌다

어느새 H는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괘씸해졌다. 이건 그냥 못 넘어가지. 화가 커져서 분노가 됐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가 나타났다. 90도로 나한테 인사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제가 불치병이 있습니다.”     


그게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란다. 아, 그랬구나. 나는 왜 식당 화장실 안 갔냐고 물었다. 또 자기는 깨끗한 화장실 아니면 못 간단다. 이 녀석이 도련님은 맞구나 싶었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자주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항상 신호가 오면 H는 나에게 시그널을 보냈다. 정말 재밌는 친구다.      


갑자기 요리학교로 가겠다는 그 녀석

그렇게 1년 반이 지나던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관두겠다고 했다. 요리 학교를 가겠단다. 회사 분위기와 동료들은 너무 좋은데 뭔가 한국 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고 그게 요리였다고 했다.


나한테 그간의 소상한 얘기를 다 해줬다. 충분히 이해가 됐고 1년 반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디가서나 자기 한 사람 몫은 할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2년이 지났고 한국에 복귀한 나에게 H가 연락을 해왔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연희동 유명 이자카야에서 일하게 됐단다. 내가 더 기뻤다. 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바로 그 이자카야로 달려 갔던 것이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  그놈, 여전히 잘 생겼네   

여전히 잘 생겼고 여전히 밝았다. 궁금한 게 많았다. 연상의 여자친구와 아주 오랫동안 사귀고 있었다. H가 자리 잡을 때까지 결혼은 무기한 연기됐고 그 사이 여자친구는 결혼적령기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 여자친구가 건너 온 적이 있었는데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보아 결혼까지 골인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더더군다나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헤어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오래된 연인들의 말로란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법이니까.

      

“여자친구랑은 헤어졌겠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있다

단정적으로 던진 내 말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에 따로 떨어져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남은 굳건했고 내년 봄이면 결혼을 할 예정이란다. 살다가 이렇게 예상을 깨는 반전이 있을 수가.


요즘 젊은 친구들과는 확실히 다른 H의 무던함과 진득함에 놀라울 뿐이다. 아무리 보아도 키 크고 잘 생겼는데다가 이제는 잘 나가는 유명 식당의 셰프로 진입한 H를 주변 여성들이 놔 두었을 리가 없다.  

    

지난 시절 같은 추억으로 함께 여행하다가 문득 그의 지병이 생각났다.     


“지병은 다 고쳤냐?”     


H는 씩 웃으며 대답을 대신한 채 사케 한 잔을 나에게 따라 주었다.


(덧붙임) 세요켄은 지난해(2022년) 12월 29일 부로 108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코로나의 문턱을 못 넘었는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추억의 한 축이 또 무너지는 것 같아서 살짝 마음이 아팠다. 음식은 추억이니까.               

100년 넘는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진 세요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나 아오야마대학 졸업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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