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짐

7전 8기

by 이상필

고등학교 시절, 늦은 저녁, 학원을 마치고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걷다가 가로수 화단에 발이 걸려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교복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이 심하게 까져 피가 났습니다.

그 이후로 길을 걷다 넘어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아기들은 걸음마를 배우고 스스로 걷기 시작하면서 넘어지는 일이 참 많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지고, 빨리 가려다가 넘어지고, 걸려 넘어지고...

그렇지만 아기들이 성장하고 자라날수록 걷다가 넘어지는 횟수는 나날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이 길을 걷다 넘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피부에 와 닿는 바깥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면서 어린이집을 마치고 놀이터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실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알아보다 식물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넓은 공간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조성해놓은 온실은 쌀쌀해진 날씨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었습니다.

입고 온 외투를 맡기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실에 입장했습니다. 입장과 동시에 높고 푸르른 나무들과 다양한 식물들로 가꾸어진 온실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했습니다. 유주는 들뜬 마음으로 길을 따라 온실을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유주야 천천히~ 뛰어가면 넘어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주는 넘어졌고 넓은 온실은 유주의 울음소리로 가득해졌습니다. 재빨리 달려가 얼굴과 무릎의 상태를 확인하였고 속상하게도 무릎에 작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유주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한동안 엄마 품에 안겨 온실을 구경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유주는 엄마 품에서 내려와 아픈 무릎을 이끌고 엄마, 아빠의 걸음에 맞추어 온실 속 식물들을 보고 나왔습니다.

넘어져 속상하고 아픈 유주

육아를 하다 보면 저 또한 유주 앞에서 수없이 넘어집니다.

유주는 다양한 식물들로 잘 가꾸어진 온실에 매료되어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 앞서 나가다가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앞서 나가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 역시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보며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부모의 생각대로 육아를 하다가 넘어져 힘들어하고 아파합니다.


부모는 다양하게 습득해 온 육아 지식과 생각 그리고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육아 마인드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유형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육아를 하게 되는 환경 또한 천차만별입니다. 또 지나친 관심, 다른 아이와의 비교, 무분별한 육아 지식 습득 등과 같은 부모의 어리숙한 모습은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육아를 하게 됩니다. 결국 부모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육아의 현실 속에서 부모는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유주가 넘어지면서 느낀 아픔으로 인해 더욱 조심하여 엄마, 아빠의 걸음에 맞추어 온실 구경을 마칠 수 있었던 것처럼 부모 역시 육아 중에 넘어지는 아픔을 통해 나의 생각대로 하는 육아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육아로 걸음을 맞추게 됩니다.

육아는 부모도 역시 어린아이임을 확인시켜 주는 듯합니다. 아이와 다르지 않게 아이에게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고 기다려주지 못하고 과한 감정을 표출하며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나를 내려놓게 하고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게 하며 아이에게 더욱 적합한 육아 방법을 생각하도록 하여 부모를 더욱 성숙하게 변화시킵니다.


아이와 부모의 수많은 넘어짐, 그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더 이상 마음 아파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7전 8기의 자세가 자라나는 아이에게나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 있어서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