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조심스러운 대면

by 이상필

가족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말,

평소에는 주지 못하는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해 영상에서만 보던 동물을 보러 동물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빠가 되어 동물원에 가는 일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다를 빠 없이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습니다.

유주는 호랑이 보고 싶어요

어릴 적 저도 그랬듯 딸 유주도 달리는 차 안에서 부터 보고 싶은 동물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은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들을 입으로 나열하며 동물원에 대한 기대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마침내 동물원에 도착했고 주말이라는 특성상 많은 인파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이곳에 몰렸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동물원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차들의 행렬 속에 앞 차의 뒷모습만 묵묵히 보며 운전을 하는 와중에 선결제를 받는 주차 정산소 전광판의 안내 문구는 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10분 내 회차 시 주차비 환불

마음속 은밀한 속삭임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아내와 딸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데리고 긴 시간 이곳에 온 수고와 동물원에 들어만 가면 유주가 애타게 기다리던 호랑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 갈등을 잠재웠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주차를 하고 동물원에 올라갔습니다.

동물원에 올라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은 주차를 하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듯 맑고 높은 하늘과 예쁜 단풍으로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동물원으로 가는 풍경


동물원에 들어가기 위해 코끼리 열차를 타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주차장에서 본 긴 차량의 행렬 속에서 내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든 줄 속에서 또다시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열차가 한 대씩 도착할 때마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 마침내 코끼리 열차를 타고 동물원에 들어갔습니다.


힘들게 들어선 동물원은 옛날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감성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둘씩 건져 올렸습니다. 동물원 안내도를 보며 어떻게 돌아볼지 생각하는데 옛 추억의 장소를 찾으며 그 감성에 더욱 젖어들고 싶었습니다.

다양한 조형물과 사진도 찍고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길 따라 만들어진 울타리 속 동물들도 구경했습니다. 역시나 어딜 가나 만나볼 수 있는 작고 활발한 동물들 보다는 크고 웅장한 그리고 화려한, 동물원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에게 사람들이 더 몰려있었습니다.

우와 얼룩말 엉덩이 진짜 크다~


신기하게 인기가 많은 큰 동물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뒷모습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유주는 "여기 봐~"를 연신 외치며 동물들을 돌아보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이라도 하듯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울타리 주변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금이라도 동물의 앞모습을 잘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자리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뒤돌아서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동물들에게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들의 엉덩이밖에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다른 동물들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동물원 구석구석을 살피며 옛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추억의 장소를 기대하며 목적지인 호랑이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육아인들이 공감하는 일이겠지만 어딜 가나 부모의 계획과 아이의 관심사는 달라서 뜻대로 동물원을 둘러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편의점은 왜 이렇게 많고 놀이터는 왜 이렇게 재밌어 보이게 만들어 놓았는지 유주는 보고 싶어 했던 호랑이를 보기도 전에 여기저기에 관심을 갖느라 시간은 점점 흘러 폐장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워지는 폐장 시간 전에 목적지에 있는 동물들까지 모두 돌아보기 위해서는 유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목마를 태우고, 가지고 간 유모차에 태워 빠르게 이동하며 지도를 따라 다양한 동물들을 구경하느라 감성은 진작부터 뒷전이 돼버렸습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 그곳에 있는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주는 커다란 호랑이를 실제로 보는 것이 신기했는지 혼자 호랑이 우리 주변을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탐색하였습니다. 폐장 시간을 앞두고 다시 출입구를 향해 돌아가야 하는 시간, 넓은 동물원을 아이를 어깨에 얹고 어르고 달래 가며 겨우 목적지에 온 터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주는 그곳에 있는 사소한 것들(유주에겐 호기심 가득한 것들)에 관심을 갖으며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 먼저 간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유주를 재촉해야만 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강제로 들고 오고 싶었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를 울리며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 돌아가는 길에서 동물원의 추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인도적으로 유주가 내려가고 싶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보지 못한 하마를 보러 가자는 말에 유주의 발걸음은 저를 향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도 유주는 이것저것에 관심을 갖으며 동물원을 빠져나가는데 협조해주지 않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저는 결국 유주에게 먼저 가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과 함께 진짜 가는 것처럼 시늉을 했습니다. 마침내 저의 뒷모습을 보고 부랴부랴 따라온 유주를 다시 어깨에 앉히고 약속대로 하마를 본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동물원은 저에게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다림, 지루함, 설렘, 서운함

자동차부터 사람 그리고 동물까지..

상황마다 무심코 바라본 무언가의 뒷모습은 저에게 많은 감정들을 전해주었습니다. 뒷모습은 앞모습과 다르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그 감정을 선택하게 해 줍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나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앞모습, 얼굴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조심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앞모습처럼 누군가에게 뒷모습으로 소통하는 일은 너무 드문 일이고 상황에 따라 나도 모르게 나의 뒷모습은 너무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 동안 딸이 저의 어떤 뒷모습을 보았을지 생각해봅니다. 혹여나 어쩔 수 없이 또는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고민해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의 뒷모습이 언제나 뒤따라가고 싶은 교훈을 담을 수 있도록...


지친 마음에 먼저 가겠다는 한마디로 유주에게 보여준 그 뒷모습이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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